19세기 말 중국의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다룬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자 만청(晩淸)시기의 대표 작가 한방경이 남긴 마지막 소설 『해상화열전』이 드디어 국내 최초 완역 출간되었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된 이 소설은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중국 소설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인 작품으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화류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국 고전문학의 정수로 널리 알려진 『홍루몽』과 유사한 작품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해상화열전』에 이르러 『홍루몽』이라는 전통은 마감되고 기루소설은 중대한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대문호 루쉰의 평을 주목한다면 이 소설의 진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해상화열전』은 작품 내부의 완결성으로 인해 문학적 글쓰기의 독창성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의 부침을 사실적으로 다룸으로써 ‘상하이’라는 공간을 중국 소설사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킨 선구성을 담보한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은 부산대 중어중문학과에서 본 작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관련 작가론 및 작품론을 두루 제출한 김영옥 선생이 맡았다. 총 두 권으로 분권 출간되는 국내 번역본에는 1894년 석인초간 영인본으로 간행될 당시 삽입되었던 삽화와 더불어 작품의 재미와 이해를 더해줄 작가 한방경의 서문과 후기 또한 빼놓지 않고 수록하였다.
Contents
서序
33 고아백은 자신이 쓴 시구를 찢어 바닥에 버리고, 왕연생은 술에 취하여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高亞白塡詞狂擲地 王蓮生醉酒怒?天
34 음흉함으로 자신의 죄를 달게 인정함에 따라 진실을 걸러내고, 원한으로 갑작스레 혼인하였다는 소식에 놀라다
瀝眞誠淫凶甘伏罪 驚實信仇怨激成親
35 가난을 벗어나려 기루를 열었으나 뾰족한 수가 없고, 잦은 병치레로 살풍경이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落煙花療貧無上策 煞風景善病有同情
36 세상에 없는 기이한 감정은 아름다운 짝을 몰아붙이고, 어려운 상황을 만회할 신력은 훌륭한 의사에게 의지한다
?世奇情打成嘉? 回天神力仰仗良醫
37 잘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 참혹하게 벌을 받고, 새파란 허풍쟁이는 몰래 계집질하다 엉겁결에 빚을 덮어쓰다
慘受刑高足枉投師 ?借債闊毛私狎妓
38 사공관에서는 어리석은 마음에 혼사가 맺어지기를 고대하고, 산가원에서는 고상한 연회를 만들어 길일을 축하하다
史公館癡心成好事 山家園雅集慶良辰
58 이학정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재산을 쏟아붓고, 제삼저는 온 천하를 거짓말로 잘도 속이다
李少爺全傾積世資 諸三姐善撒瞞天?
59 문서를 쥐고서 연환계를 차용하고,
이름을 떨치려고 화답시를 구걸하다
攫文書借用連環計 ?名氣央題和韻詩
60 늙은이는 아내를 얻어 아편 놀에 빠지고,
간수하는 자신이 도적질하여 구름 속으로 종적을 감추다
老夫得妻煙霞有癖 監守自盜雲水無?
61 근골을 펴고 버들잎을 뚫으려고 잠시 기술을 시도하고, 머리를 써가며 국화를 마주하고 괴롭게 시를 짓다
舒筋骨穿楊聊試技 困聰明對菊苦吟詩
62 침대에서 여자 하인을 몰래 만나다 단꿈에서 깨어나고, 부인이 되겠다는 사담이 벽 뒤로 새어나가다
?大姐牀頭驚好夢 做老婆壁後洩私談
63 여우겨드랑이 털을 모아 모피를 만들 듯 좋은 인연을 맺고, 꽃을 옮겨 심고 나무를 접붙이듯 묘한 계획을 안배하다
集腋成?良緣湊合 移花接木妙計安排
64 답답함에 화가 나서 팔찌를 저당 잡히고,
명치를 세차게 걷어차여 다치다
喫悶氣怒?纏臂金 中暗傷猛?窩心脚
후기
작품 해설 - 김영옥
Author
한방경,김영옥
송강부 누현(松江府 婁縣, 지금의 상하이)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 한종문(韓宗文, 1819∼?)이 형부주사(刑部主事) 직책을 맡게 되어 유년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 1876년 전후 고향 누현으로 돌아와 수재(秀才)가 되었으나, 이후 1885년 난징 향시에 낙방하였다.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신보』에서 편집자 및 논설 기고자로 생활하였다. 1891년 베이징 향시에 낙방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1892년 2월에 중국 최초 문예 잡지 『해상기서』를 간행하여 『해상화열전』을 연재하였다. 1894년 초봄 64회 석인본 『해상화열전』을 출판한 후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송강부 누현(松江府 婁縣, 지금의 상하이)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 한종문(韓宗文, 1819∼?)이 형부주사(刑部主事) 직책을 맡게 되어 유년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 1876년 전후 고향 누현으로 돌아와 수재(秀才)가 되었으나, 이후 1885년 난징 향시에 낙방하였다.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신보』에서 편집자 및 논설 기고자로 생활하였다. 1891년 베이징 향시에 낙방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1892년 2월에 중국 최초 문예 잡지 『해상기서』를 간행하여 『해상화열전』을 연재하였다. 1894년 초봄 64회 석인본 『해상화열전』을 출판한 후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