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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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1/21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64451670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극적인 충돌 지점의 서막을 알린 연설!
신의 섭리를 부정하고 공자를 찬양했다는 비난 속에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깨우다!


이 책은 1726년에 출간한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문이다. 이 연설문에는 1721년 당시의 연설과 이 연설에 대해 볼프가 해설한 상세한 주석이 달려 있다. 볼프가 자신의 연설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출판한 이유는 그의 연설을 왜곡한 해적판 책이 출간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건주의자 요아힘 랑게(Joachim Lange)가 볼프의 연설에 비판적 주석을 단 책을 출간해 그를 공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볼프는 이 책에서 중국의 도덕적 행위와 인륜의 기초는 오로지 ‘이성’에 놓여 있으며, 이 이성은 자연에 기초해 있다고 말한다. 볼프는 자신이 “인간 정신의 본성을 깊이 생각한 후에” 발견한 진리처럼 고대 중국인들 역시 “인간 정신의 본성과 일치하는 그와 같은 원리를 지혜의 참된 원리”로 여기고 이성의 자연적 힘을 통해 인간의 본성 속에 담긴 인간 정신의 근거를 찾고자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볼프는 이성과 일치하는 것이 인간적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며, 이것이 행위가 따라야 할 규범이자 시금석이라고 주장한다. 볼프는 중국인들의 도덕 원리가 바로 이 시금석에 일치한다고 보았다.

볼프는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일치함으로써 자연법칙과 일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볼프의 기본 사상에 따르면, 모든 피조물은 우주의 전체 질서와의 조화와 일치하는 방향에서 원래 완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볼프는 소우주와 대우주, 즉 인간과 자연의 일치가 중국의 지혜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볼프는 중국인의 철학자 공자(孔子)를 고대 중국으로부터 내려온 지혜에 따라 인간의 ‘완전성’을 위해 소우주와 대우주의 일치를 요구한 인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고대 중국인들은 이 중국적 지혜의 원리, 즉 소우주와 대우주의 일치라는 원리를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볼프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창조자를 몰랐기에 자연종교도 가지지 못했고 신적 계시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덕(德)의 행사를 장려하기 위해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의 힘”과 내적 동인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종국적으로 중국인들은 이 자연의 힘을 악덕, 죄악, 악행이 싹터 나오는 인간의 불완전성보다는 선을 행하고 덕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했다고 볼프는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전체적 행위를 궁극 목적으로서 자신의 완전성에, 즉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최상의 완전성에” 맞추어 놓았다는 것이다. 볼프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바로 도덕적 행위와 연결되는 바로 이 완전성을 향한 중국인들의 행위이다.
Contents
옮긴이의 말 9

독역자 해설 17
편집사 113
라틴어 표제, 표제 번역 129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
머리말 133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 153
볼프의 주석 237

독역자의 인용문헌(약어) 379
참고문헌 389
라틴어 텍스트 편집 및 볼프의 라틴어 약어 설명 393

옮긴이 해제: 볼프의 중국철학 수용과 이해 397
크리스티안 볼프 연보 433
문헌 찾아보기 435
사항 찾아보기 439
Author
크리스티안 볼프,이동희
슐레지엔의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개신교도 피혁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687년에 라틴어 학교로 명성이 높았던 마리아-막달레나 김나지움에 입학했으며, 1699년에는 예나 대학에서 신학 및 수학과 물리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1702년 교수자격 취득 논문인「수학적 방법에 의해 구성된 보편적 실천철학」을 완성했으며, 이듬해 강사 자격을 취득해 1706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강의했다. 1704년부터 라이프니츠와 편지 교환을 시작하여 지적 관계를 맺었으며, 그의 추천으로 1706년에 할레 대학 교수가 되었다. 1721년 할레 대학 부총장 퇴임 기념으로 한 강연인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이 빌미가 되어 경건주의자들에게 ‘무신론’으로 고발되었으며, 172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 의해 48시간 이내에 프로이센 왕국을 떠나라는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곧바로 마르부르크 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연구와 교육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1726년에 1721년 강연을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해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을 상세한 주석을 달아 출간했다. 1740년 프리드리히 대왕에 의해 복권되어 다시 할레 대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1743년에는 총장에 취임했다. 1745년 바이에른 선제후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754년 4월 9일 할레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독일어 형이상학』(Deutsche Metaphysik, 1719), 『제일철학 또는 존재론』(Philosophia prima, sive Ontologia, 1729), 『철인왕과 통치하는 철학자』(De rege philosophate et philosopho regnante, 1730),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 1734) 등이 있다.
슐레지엔의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개신교도 피혁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687년에 라틴어 학교로 명성이 높았던 마리아-막달레나 김나지움에 입학했으며, 1699년에는 예나 대학에서 신학 및 수학과 물리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1702년 교수자격 취득 논문인「수학적 방법에 의해 구성된 보편적 실천철학」을 완성했으며, 이듬해 강사 자격을 취득해 1706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강의했다. 1704년부터 라이프니츠와 편지 교환을 시작하여 지적 관계를 맺었으며, 그의 추천으로 1706년에 할레 대학 교수가 되었다. 1721년 할레 대학 부총장 퇴임 기념으로 한 강연인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이 빌미가 되어 경건주의자들에게 ‘무신론’으로 고발되었으며, 172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 의해 48시간 이내에 프로이센 왕국을 떠나라는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곧바로 마르부르크 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연구와 교육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1726년에 1721년 강연을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해 『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한 연설』을 상세한 주석을 달아 출간했다. 1740년 프리드리히 대왕에 의해 복권되어 다시 할레 대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1743년에는 총장에 취임했다. 1745년 바이에른 선제후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754년 4월 9일 할레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독일어 형이상학』(Deutsche Metaphysik, 1719), 『제일철학 또는 존재론』(Philosophia prima, sive Ontologia, 1729), 『철인왕과 통치하는 철학자』(De rege philosophate et philosopho regnante, 1730),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 173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