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素隱) 박홍규(朴洪奎, 1919~94)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의 철학자이다. 하지만 철학 전공자들 가운데 박홍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가 남긴 업적은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서양 고대철학 분야(플라톤)와 현대 프랑스 철학(앙리 베르그송)을 접목하여 서양 형이상학의 본질을 규명해내려 했던 것은 그의 대표적인 학문적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뛰어난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남다른 학문적 삶의 태도에 기인한다. 그는 살아생전 대학에서 오직 강의를 통한 가르침이라는 외길만 걸어오면서 저술은 물론 그 흔한 신문이나 잡지 기고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늘 제자들에게 큰 깨달음과 학문적 심오함을 안겨주었고 제자들은 대학원 수업을 마치면 매번 함께 모여 밤늦도록 박홍규의 가르침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곤 했다. 다행히 그가 남긴 강의 녹음을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녹취·정리하여 『박홍규 전집』(전5권, 민음사)으로 펴내 그의 지적 유산을 오롯이 담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박홍규 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그동안 미미한 실정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박홍규의 가르침 자체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심오한 형이상학적 난제들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의 형식 또한 체계적인 논문이나 저술이 아닌 대부분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 실제 강의록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홍규 철학의 이해와 확산을 위한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그의 철학을 분석해 그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는 작업이 요구되기에 후학들을 중심으로 이번 책을 기획하여 펴내게 되었다.
Contents
머리말 5
제1장 박홍규의 무한정자(apeiron)에 대한 사색: 「『티마이오스』 편 강의」를 중심으로 / 이태수 15
제2장 0과 1 사이 / 윤구병 45
제3장 소은(Platonberg) 박홍규의 형이상학과 자연과학 / 송영진 55
제4장 박홍규의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한 소고 / 박희영 89
제5장 박홍규의 존재론적 사유에 담긴 플라톤의 정치철학 / 이정호 111
제6장 “읽고 정리하게” 염수균 / 169
제7장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적’ 관점들: 하나의 생성, 두 질서, 세 실사 / 류종렬 187
제8장 박홍규 철학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 / 김재홍 219
제9장 베르그송과 서구 존재론 극복: 박홍규의 해명을 중심으로 / 이정우 247
제10장 박홍규의 양상론 / 최화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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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303
철학교수를 그만두고 공동체 학교를 꾸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글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이다. 1943년에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공부는 제법 했으나 말썽도 많이 부리는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한다.
위로 형이 여덟 명 있었는데 가장 큰 형의 이름은 일병이고,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 되었다. 소설에서 봤던 철학과 학생이 좋아 보여 얼결에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갔고, 강의는 듣는 둥 마는 둥 바람처럼 떠돌다가 성적표에 뜬 초승달(C)과 반달(D)을 원 없이 보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도서관에 앉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희랍어, 라틴어를 독학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72년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에 들어갔고, 《배움나무》라는 사외보를 만든다. 둘째 누리가 태어나던 1976년에는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충북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어린이책 기획자로도 활동하였다.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올챙이 그림책》을 기획해서 펴내고, 1988년 보리출판사를 만들어 교육과 어린이 이야기를 담아내는 책을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일러주는 전집형 어린이 백과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번역서가 판치던 유아 그림책에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는 창작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1989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결성되었을 때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고, 그 뒤로 오랫동안 단독 대표를 맡았다. 1996년부터 철학 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고 싶어 산과 들과 갯벌이 있는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했다. 20여 가구 50여 명이 모여 사는 변산공동체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젓갈 효소 술 같은 것을 만들어 자급자족하면서 자녀들에게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배우고 가르쳐왔다.
'변산교육공동체' 혹은 '변산공동체학교'는 “삶터와 일터가 동떨어지고, 배움터마저 삶터와 일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근대식 제도 교육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라는 비판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스무 해가 넘도록 시간 단위로 타인에게 통제 당하고, 기계적인 시간 계획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기대하는 것은 삶은 밤에 싹 돋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노릇이라는 그는 텃밭 가꾸기, 천연 염색하기, 발효 식품 만들기, 요리 하기, 나무로 생활용품 만들기, 그릇 빚기 따위를 배우며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어른들과 함께 자유롭게 지내고, 자연 속에서 자기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짓에 경악하며 오늘도 그는 아이들과 배우며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조그마한 내 꿈 하나』, 『실험 학교 이야기』, 『잡초는 없다』,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있음과 없음』, 『모래알의 사랑』 등이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그의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변산공동체와 그 이후의 10여 년에 대한 생생한 삶의 기록으로,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과 국가간 빈부 격차의 확대, 갈등은 심화되고 우리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되어 가고 있을 경고한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여러 생명체가 함께 더불어 살 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또한 함께하는 삶을 일군 윤구병의 공동체 에세이 『흙을 밟으며 살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윤구병의 생태 에세이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일, 놀이, 공부가 하나인 윤구병의 교육 에세이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를 통해 변산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삶과 사상을 담기도 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7년 넘게 공을 들인, 남녘과 북녘 어린이가 함께 보는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하고 감수했으며, 어린이 그림책 『심심해서 그랬어』『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당산 할매와 나』『울보 바보 이야기』『모르는 게 더 많아』 들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