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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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8/25
Pages/Weight/Size 140*90*12mm
ISBN 9788963655291
Categories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Description
노벨문학상 수상(1946년) 작가 헤르만 헤세의 유년시절의 자화상이요
동시에 그의 고향 슈바벤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다.


이 작품은 1906년 헤세의 나이 29세 되던 해 베를린의 피셔사에서 출판되었다. 그의 출세작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 1904)》에 뒤이어 발표된 이 작품으로 인해 그의 작가로서의 지위는 확고해졌다.

판을 거듭한 횟수는 무려 156판에 달하여 그의 어느 작품도 이를 따를 수 없었다. 이는 오직 만인에게 가장 다정스러운 소년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절실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헤세가 겪은 즐거움은 곧 우리들의 즐거움이요, 헤세가 겪은 슬픔은 곧 우리들 자신의 슬픔이었다.

헤세는 1877년 7월 2일 슈바벤의 칼프에서 신교의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그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 괴팅겐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이듬해에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관비생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가장 파란 많았던 이 시절―마울브론 신학교 입학 전후에서부터 이 무렵까지―의 체험을 자서전적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Contents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5

신비로운 불꽃 11
자유롭고 아름다운 여름날 55
뽐내고 싶은 마음과 푸른 희망 90
어찌할 수 없는 우정 138
기쁨이 섞인 회상 177
청춘과 환희의 파도 206
평화와 휴식이 가득 찬 밤 237

◎ 연 보 270
Author
헤르만 헤세,박환덕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