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회의록·공진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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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7/05
Pages/Weight/Size 140*210*20mm
ISBN 9788963655185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단편소설의 형식이 확립된 1920년 이전― 작품을 통해 액자소설 구성을 실현하고 근대뿐 아니라 현대 단편소설의 분량에도 근접한 자(字)수 범위와, 단순 형태의 짧은 서사체가 아니라 단편소설의 고유 형식을 의식하고 정립하는 데 기여한 작가 안국선의 근대 최초 단편집을 수록한
『금수회의록·공진회』

안국선은 개화기 시대 신소설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화적 상상력으로 인간 세계를 풍자한 신소설 작품 〈금수회의록〉과 단편소설집 『공진회』로 단편소설의 형태 정립에 기여했다.
우화소설은 동물을 인격화하거나 의인화함으로써 이를 통해 인간 그리고 인간 세계 또는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소설을 일컫는다. 서사문학으로 사건의 서술, 이야기보다 연설 어법으로 일관되어, 문예적 형상화보다 사람들의 의식을 계도화하기 위한 극화 및 연설 가치가 선행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으로, 어떤 동물인지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들 모두 자신의 표상인 ‘반포지효’ ‘호가호위’ ‘정와어해’ ‘구밀복검’ ‘무장공자’ ‘영영지극’ ‘가정맹어호’ ‘쌍거쌍래’ 등 인간 세계의 교훈을 전하고 있다.

짐승의 자찬과 인간에 대한 비난이 맞물려, 인간이라는 존재는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 모르고 개구리와 같이 분수를 지킬 줄도 모르며, 여우보다 간사하고 호랑이보다 더 포악하고 벌처럼 정직하지 않고 파리처럼 동포를 사랑할 줄 모르고 창자 없는 짓은 게보다도 심하고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러울 지경이라는, 크게 8가지의 인간악에 대해 열거한다.

그러나 이는 동물들의 입을 빌려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실제 작가의 사회관과 인간관을 총체적으로 개관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안국선은 〈금수회의록〉을 통해 놀랄 만큼 신랄한 풍자의 일면을 보여준다. 또한 풍자가로서 외세와 내정의 정치적 국면의 불합리를 지적하고 동서양의 교양을 두루 수용 병렬하면서 인간 사회 전반의 비리를 제거하기 위해 풍자를 발휘하고 있다. 교훈주의적인 설교나 연설의 어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안국선은 그 시대의 문제를 의식하고 시도한 작가였다.

『공진회』는 본래 〈기생〉 〈인력거꾼〉 〈시골노인 이야기〉 외 5편의 작품을 수록하여 출간하고자 했으나, 〈탐정순사〉 〈외국인의 화〉 등이 검열 과정에서 두 작품이 삭제되어 3편으로 짜여진 근대 최초 단편집이다. 이 작품집은 단편소설의 형태가 확립된 1920년대의 작품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으며, 근대적 단편소설의 형태를 정립하는 단계에 기여했다. 그 형태적으로 제한적인 질서하에 자(字)수와 매수의 제약이 전제되었으며, 단순 형태의 짧은 서사체와 달리 이 작품집에 수록된 3편의 작품은 균일하게 자수의 범위가 12,000~14,000자인데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6~70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근대뿐만 아니라 현대 단편소설의 분량에도 근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수록작인 〈시골노인 이야기〉에서 액자소설 구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는 현대에서도 시점의 원근법적인 객관화와 거리 조정, 호기심 유발, 서술 내용에 대한 신뢰성 고양을 위해 많이 활용되는 작법이다. 그의 이러한 전제가 있었기에 액자소설의 대표작인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를 보다 촉진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Contents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5

금수회의록 · 15

공진회 · 61


기생 · 69
인력거꾼 · 90
시골노인 이야기 · 108

연설법방 · 129

연보 · 200
Author
안국선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뒤, 1896년 도쿄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 7월에 졸업했다. 그는 사상적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문명화가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은 그 모델로 비쳤다. 아울러 ‘조선 우민(愚民)’에 대한 ‘교화(敎化)’와 대한제국 타도를 개혁과 진보의 지름길이라고 파악했다. 대신에 의병 운동을 ‘어리석은 백성이 멋모르고 날뛰는 것’으로 인식했다.

안국선은 1899년 11월 귀국했지만, 안경수와 박영효 관련 정변 사건에 얽혀 1907년까지 유배를 당한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는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했고, 여러 저서를 쓰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7년 11월 30일부터는 제실재산정리국 사무관-탁지부 이재국 감독과장, 국고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11년 3월엔 청도군수에 임명되어 2년 3개월 동안 재임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황실 재산을 일본에 넘긴 일을 한 셈이었고, 그 공으로 청도군수를 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직을 떠난 이후에는 박영효와 밀접한 관계를 말년까지 지속하면서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대부분 실패했다). 말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926년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뒤, 1896년 도쿄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 7월에 졸업했다. 그는 사상적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문명화가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은 그 모델로 비쳤다. 아울러 ‘조선 우민(愚民)’에 대한 ‘교화(敎化)’와 대한제국 타도를 개혁과 진보의 지름길이라고 파악했다. 대신에 의병 운동을 ‘어리석은 백성이 멋모르고 날뛰는 것’으로 인식했다.

안국선은 1899년 11월 귀국했지만, 안경수와 박영효 관련 정변 사건에 얽혀 1907년까지 유배를 당한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는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했고, 여러 저서를 쓰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7년 11월 30일부터는 제실재산정리국 사무관-탁지부 이재국 감독과장, 국고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11년 3월엔 청도군수에 임명되어 2년 3개월 동안 재임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황실 재산을 일본에 넘긴 일을 한 셈이었고, 그 공으로 청도군수를 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직을 떠난 이후에는 박영효와 밀접한 관계를 말년까지 지속하면서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대부분 실패했다). 말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926년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