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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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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63655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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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6/10
Pages/Weight/Size 140*210*30mm
ISBN 9788963655086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목민심서』는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강진 다산초당에서 완성한 저서로, 지방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을 자세하고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일찍이 수령을 지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실정을 보고, 정조의 어명으로 경기도 암행어사가 되어 농민들의 고통을 직접 살펴본 일과 유배 생활 중 지방 관리의 횡포와 무능 그리고 아전의 농간과 농민의 억울하고 가엾은 사정을 많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목민심서』를 쓰게 된 동기였을 것이다.근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의 참모습, 관리의 부패와 횡포가 어떠했으며 서민들의 고통과 염원이 어떠했었는지를 알려면 먼저 다산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다산의 저서의 밑바닥을 흐르는 정신은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데 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목민심서』는 그 집약이며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Contents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5

부임 육조(赴任 六條) · 13
율기 육조(律己 六條) · 31
봉공 육조(奉公 六條) · 66
애민 육조(愛民 六條) · 91
이전 육조(吏典 六條) · 109
호전 육조(戶典 六條) · 135
예전 육조(禮典 六條) · 199
병전 육조(兵典 六條) · 227
형전 육조(刑典 六條) · 258
공전 육조(工典 六條) · 291
진황 육조(賑荒 六條) · 317
해관 육조(解官 六條) · 341

연보 · 362
Author
정약용,이민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