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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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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6365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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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5/10
Pages/Weight/Size 153*225*20mm
ISBN 9788963654218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하고
한 국가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 확립을 제창한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영국 공리주의 지도자인 제임스 밀(James Mill)의 장남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의 의해 조기 교육을 받았다. 16세에 ‘공리주의자의 회’를 만들어 철학적 급진파를 지도하였으며,1823년 동인도 회사에 입사했다. 1824년에는『웨스트 민스터 리뷰』를 출간하여 공리주의의 보급과 의회 개혁을 제창하였다. 1826년 공리주의에 의문을 품고 정신적 위기에 빠졌으나 한편으로 콜리지, 워즈워스 등의 역사?사회관을 배워 극복하였다. 1851년에는 재주와 아름다움을 겸비한 테일러 부인과 결혼하였으며, 1865년부터 1868년까지 대의원 생활을 하며 선거법 개정 문제와 노동자?여성의 참정권, 토지 국유화 등을 후원하였고 다방면에 걸쳐 많은 저작을 냈다.

이 책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은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의 체계를 확립한 밀의 생애와 사상을 온전하게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현대에 더욱 가치 있는 저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과 내밀한 삶을 면면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5

제1장 1806~1819년 · 11
어린 시절과 소년기의 교육

제2장 1813~1821년 · 43
소년기에 받은 도덕적 영향 · 아버지의 성격과 사상

제3장 1821~1823년 · 64
교육의 마지막 단계와 독학의 첫 단계

제4장 1823~1828년 · 84
젊은 날의 전도《웨스트민스터 리뷰》

제5장 1826~1832년 · 120
내 정신사의 한 위기 · 한 걸음 전진

제6장 1830~1840년 · 160
내 생애의 가장 중요한 교육의 시작 · 아버지의 죽음 · 1840년까지의 저술과 그 밖의 사업

제7장 1840~1870년 · 191
그 후 내 생애의 내력 · 《논리학 체계》의 완성 · 《경제학 원리》의 출판 · 결혼 · 동인도 회사에서 사직 · 《자유론》출판 · 《대의정치의 고찰》 · 아메리카의 남북전쟁 · 해밀턴 철학의 검토 · 의회 생활 · 그 후의 나의 생활

□ 해설 · 272
Author
존 스튜어트 밀,배영원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