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근본 윤리인 인륜과 도덕 규범이 집약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윤리사상과 행동규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
[논어]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동을 기록한 경전이다.
이 책은 공자가 평생을 추구해온 인(仁)의 뜻, 철학 윤리 정치 교육에 대한 신념, 삶에 대한 교훈이 간결하고도 함축적으로 씌어 있는 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중국 최초의 어록이라 할 수 있다.
‘인’은 공자의 근본사상인 동시에 그의 이상이기도 하다. ‘인’은 한정된 것이 아닌 포괄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 첫째로 인은 사랑을 의미하며, 둘째로 인은 예절을 의미한다. 셋째로 인은 의로움을 의미하며, 넷째로 인은 용기를 의미한다. 또한 다섯째로 인은 즐거움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학문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것이 곧 ‘인’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약 2천5백년 전의 춘추시대 사람인만큼 그의 사상에 역사적·시대적인 제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근본적인 도덕 사상은 고금을 통하여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 공자사상의 집약체가 바로 이 책이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