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사실이 있다. 대리운전판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플랫폼 시스템에서 생긴다고 여기는 것이다. 플랫폼이라는 뭔가 크고 복잡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고 해결책도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아예 들여다볼 엄두를 못 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리운전판에서 생기는 문제들 가운데 플랫폼 시스템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문제는 플랫폼과 별 상관없다. 거대한 송유관에 누군가 구멍을 뚫어서 기름을 뽑아먹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구멍 뚫기 내지 빨대꽂기를 송유관 시스템의 일부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플랫폼 시스템을 악용하는 업체들이 만드는 문제를 플랫폼 시스템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 할 수는 없다. ‘카카오’나 ‘티맵’ 같은 거대한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대리운전은 있었다. 플랫폼 기업이 새로운 직종을 만든 게 아니라, 있는 직종에 플랫폼 기업이 끼어든 것이다. 이런 연혁을 떠올리면 대리판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많은 것이 이전부터 있던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 옳다.
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수수료 인하를 내걸면 기존 업체들은 ‘골목상권 침해’ 운운하면서 반발한다. 플랫폼 기업은 그 핑계로 수수료를 유지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자사 프로그램 공급과 데이터 확충을 위하여 기존 업체들과 제휴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흡수한다. 그렇게 아무 근거가 없을뿐더러 마땅히 없애야 할 각종 비용은 그대로 유지된다. 오히려 기존 업체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살려 ‘프로서비스’ 같은 비용을 추가하기까지 한다. 카카오가 전국대리노조와의 단체협약으로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프로서비스는 운영 중이다. 플랫폼 기업은 낡은 체계를 혁파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 같은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낡은 체계가 더 정교하고 더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대리업체들은 이 막강한 시스템에 ‘빨대를 꽂아서’ 기존의 착취를 강화한다. 19세기식 노동구조를 21세기식 최첨단 시스템으로 강화했다고 할 수 있다.
Contents
시작하는 글
제1장 시급 6,716원짜리 노동자
제2장 플랫폼, 혁신적인 착취
제3장 플랫폼에 빨대 꽂기
제4장 대리기사로 산다는 것
제5장 여성 대리기사들의 수다
제6장 오지에서 탈출하기
Author
우한기
생활 전선에서 일하다가 문득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꼬박 20년을 채운 학원생활을 접고 3년 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다. 찾은 일이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 프리랜서 작가인데, 그러다 센터 사상쉼터에서 일하게 됐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오랜 꿈이 이렇게 이뤄졌다. 최첨단이라는 플랫폼에서 최저임금 절반 수준의 저소득과 부족분을 메우려는 장시간노동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매일 만난다. ‘운명’이라 여기고 여기서 버둥거릴 참이다.
생활 전선에서 일하다가 문득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꼬박 20년을 채운 학원생활을 접고 3년 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다. 찾은 일이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 프리랜서 작가인데, 그러다 센터 사상쉼터에서 일하게 됐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오랜 꿈이 이렇게 이뤄졌다. 최첨단이라는 플랫폼에서 최저임금 절반 수준의 저소득과 부족분을 메우려는 장시간노동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매일 만난다. ‘운명’이라 여기고 여기서 버둥거릴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