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현대사회는 그 방향을 잃어버린 채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꿈이라는 것은 이미 사치처럼 되어버렸다. 우리는 유리 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족, 국가, 종교는 이런 불안에 대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이런 불안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한편에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한편에서 ‘나’는 특별할 게 없는 무력하고 초라한 존재로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만 하고 자존감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시대의 명령이다. 오늘날 지배적으로 된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의 역사적 기원은 무엇일까? 이 충동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일까?
일본의 20세기 초, 즉 다이쇼기(1912~1926)에서 쇼와(1926~1989) 초기에 이르는 시기는 새로운 시대(사조)의 시작과 어두운 시대의 전조가 동시에 감지되고 있었던 대전환기였다. 일본의 예술·건축·영화·문학은 다양한 실험을 시작했고 장르를 넘어선 혼종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꽃을 피웠다. 역사상 처음으로 ‘무명의’ 개인의 ‘생명[삶]’이 곳곳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했고, 그것을 거대한 운동으로 결실맺고자 한 움직임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21세기 신자유주의와 20세기 초 일본사회를 비교하고 대화하게 함으로써 저자는 두 시대 모두에서 생명[삶]이 사회적·정치적 화두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21세기에 우리들은 ‘나 자신’의 삶을 부단히 가꾸고 계발해야만 한다고 강요 받는다. 20세기 초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나 자신’은 예술과 창조의 시작점, 분출하는 생명 그 자체였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이후의 일본 사회와 문화는, 2011년 3월 11일 동북부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참사 이후 일본 및 세계 사회와 문화의 한 축도를 보여준다.
이 책은 생명[삶]을 중심에 놓고 노동·정치·예술을 통합적으로 사고했던 20세기 초 일본 예술가들의 생각과 작품을 해부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이다. 우리 시대에 생명[삶]의 회복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거기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 수 있는가? 다시 말해 20세기 초의 미적 아나키즘의 계보에 다가가는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하나의 원점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은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활약했던 아리시마 다케오의 말이다. 아리시마 다케오를 시작으로 미야자와 겐지, 에도가와 란포, 야나기 무네요시, 오스기 사카에, 곤 와지로, 야스다 요주로, 요코미쓰 리이치, 하기와라 교지로 등 ‘생명[삶]과 예술’ 그리고 ‘생명[삶]과 운동’의 통합을 시도했던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Contents
프롤로그 미적 아나키즘이란 무엇인가 9
세계주의와 벌거벗은 ‘생명’ 9
아나키즘의 시대 12
미적 아나키즘의 특징 16
생명[삶] 권력과 아나키즘 24
대표성과 적대성 26
공동체 28
1장 포스트 백화파 세대 33
자유의 아포리아 35
‘분리’와 ‘표현’ 39
지진과 ‘부락건축 논쟁’ 49
‘고현학’ 56
도시의 리듬 60
‘전위’의 시대 66
개의 언어 72
‘벌거벗은 생명’ 76
사적 언어로서의 시 82
도시 폭동 84
2장 닫힌 방 91
공간 배치의 개선 93
농촌과 도시의 결합?―?전원 유토피아 100
‘독실’의 탄생 108
열거하는 것, 수집하는 것 120
거울의 세계?―?쇼와 128
『비인간적인 사랑』 137
욕망의 방 148
3장 기술의 무한 운동 159
‘민중적 공예’의 탄생 161
‘자연’과 ‘예술 작품의 근원’ 169
‘전승적 가치’ 176
‘이름’의 부정과 야나기 미학의 귀결 183
4장 셀룰로이드 속 혁명 187
요코미쓰의 『상하이』 189
스펙타클 도시 194
영화와 연필 198
군중, 기계, 아나키 205
도시의 볼거리 212
영화라는 신체 217
5장 의식의 형이상학 221
폭력의 예감 223
메르헨, 세계가 변모할 때 229
‘순수경험’의 시학 232
이야기와 바람 240
‘상기’의 극장?―?대기권 오페라 244
자연, 또는 사물의 언어 249
이름의 해체 256
‘먹는 것’과 ‘먹히는 것’ 258
빛과 율동 264
6장 ‘혈통’의 생성 275
다시 주조되는 미적 아나키즘 277
『예술의 한계와 한계의 예술』 280
‘회상’과 ‘동경’ 284
‘혈통’의 생성 291
에필로그 미적 아나키즘의 행방 301
‘자연’이라는 문제 301
‘예술’에서 서브컬처(하위문화)로?―?‘전후’의 여러 가지 문제들 304
현대의 ‘불행’과 생명[삶]의 생산 310
지은이 후기 315
한국어판 지은이 후기 319
옮긴이 후기 324
후주 328
참고문헌 369
인명 찾아보기 374
용어 찾아보기 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