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대한민국 국보 132호, 반성을 위한 전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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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1/05
Pages/Weight/Size 150*210*20mm
ISBN 9788961673440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역사/인물
Description
유성룡은 왜 징비록(懲毖錄)을 썼을까?

이 책은 서애 유성룡이 전란의 교훈을 따져 후세에게 전해 잘못된 역사의 답습을 경계시키려 쓴 책으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벌어졌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왕조 최고의 재상이라고 평가받는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최고 관직을 지내면서 군무를 총괄하고 국방 강화와 민심 수습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실행하며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 벼슬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급박하게 전개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Contents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 18

서문 … 25

제1부 임진왜란 6년 전부터 파천까지의 기록

1. 일본과 우리나라의 화친(和親) … 30
2. 불길한 조짐 … 34
3. 신립(申砬) 그리고 임진년 봄 … 43
4. 임금이 내리신 보검 … 50
5. 우병사 김성일과 순변사 이일 … 59
6. 안타깝기만 한 조령(鳥嶺) 전투 … 64
7. 파천(播遷) 길에 비까지 퍼붓고 … 72

제2부 평양 파천에서 명나라 군을 맞기까지의 기록

8. 어처구니없는 주검들 … 82
9. 아, 평양성에서 일어난 일들 … 88
10. 송강 정철과의 갈등 … 98
11. 평양도 왜적에게 … 106
12. 명나라 구원병이 드디어 오다 … 112
13. 왜란의 첫 번째 대승, 이순신 … 123
14. 각 고을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 136

제3부 왜적의 철군, 정유재란의 기록

15. 명나라 대부대 지원군의 도착 … 146
16. 한심스러운 제독, 이여송 … 154
17. 나와 이여송과의 대립 … 165
18. 아, 되찾은 한양 … 177
19. 남쪽 끝에서 말썽 부리는 왜적 … 184
20. 아! 감옥살이의 이순신 … 193
21.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 201
22. 참으로 비통하도다, 이순신의 전사! … 212

제4부 녹후잡기

1. 꼬리를 잇는 괴이한 일들 … 224
2. 세상만사가 천운인 것을 … 226
3. 병법의 으뜸은 ‘유리한 지형’ … 229
4. 우연히 떠오른 기발한 계책 … 233
5. 잘못 간 앞 수레바퀴 자국 … 235
6. 칡덩굴 다리로 기병이 말을 달리다 … 239
7. 왜적 진영에 들어가 화약을 만든 사람 … 242
8. 심유경의 긴 서신 … 245

부록 … 255

-유성룡은 왜 징비록을 썼는가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는가
-연표로 보는 임진왜란
Author
서애 유성룡,김문수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