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의 정치

새로운 저항의 공간과 주체에 대한 사유

2010년 12월 튀니지의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스물여섯 살 난 청년이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그의 몸을 태운 불길은 수도로 옮겨 가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는 봉기의 방아쇠를 당겼고, 이내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마드리드의 솔 광장과 그리스의 신티그마 광장으로, 대륙과 대양을 넘어 미국의 월스트리트로까지 확산되었다. 메리필드는 지구 곳곳의 ‘분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저항의 열기에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

일련의 ‘점령하라’ 운동은 도시화가 지구를 뒤덮을 듯한 기세로 진행되고,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치고 빠지는 전략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거대한 불안정 노동 종사자 무리가 도시 공간을 배회하는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메리필드는 이들 도시 점령자들로부터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도시 이론이 관습적으로 머물던 개념적이고 실천적 영토를 무너뜨릴 잠재력을 발견한다. 그리고 새로운 저항이 공간과 맺는 긴밀한 관계, 그것이 공간을 변형시키는 방식, 그리고 그러한 공간의 생산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복잡다단한 경로에 주목하면서 변혁의 정치를 사유할 흥미로운 플랫폼을 제공한다. 폭발하듯 분출한 급진 정치에 대한 열망이 한풀 꺾이고 좌파가 진퇴양난에 빠진 듯한 지금, 우리가 메리필드에게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