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감우의 시는 공연 마지막까지 쏟아부은 열정을 잠시 내려두고 커튼콜을 기다리는 순수한 무대다. 그녀는 비워야 채워지는 여백의 미학을 기다릴 줄 아는 시인이다. 「타조 소년들(연출가: 토니 그레이엄)」은 ‘무대 위의 시’라고 불리는 청소년극이다. 삶의 여정을 풀어낸 이 연극이 요동치며 흘러가는 청소년기의 비움과 스며듦으로 관객을 사로잡듯, 김감우 시 또한 비움과 스며듦의 무대 연출로 독자를 설득한다. 자기중심의 해체를 통해 자기비허(Kenosis)의 시문(詩門)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김감우는 첫 시집 『바람을 만지며 놀다(2018, 고요아침)』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고백했고(전해수), 이번 시집 『잔과 바다(2024, 현대시)』에서는 무주심(無住心)의 탈중심적 사유를 견인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무(無)와 공(空)을 태워 없애는 비움과 채움의 중심에 있다. ‘길’과 ‘소리’와 ‘말’을 통해 스스로를 열고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김감우 시세계에 초청된 관객은 스스로를 낮추고 물러나는 여백의 무대를 맘껏 즐길 수 있다.
Contents
시인의 말
제1부
탑 12
오후 14
구멍 16
낙하 18
너머로 뭉근하게 20
우리 22
붉다는 말 24
자리 25
숲 26
소국이 선 채로 28
월평로 30
가령 32
시작 34
고수 36
제2부
들리냐? 38
길 위의 시간 40
벽 뒤로 42
낯선 파랑 44
낡은 첼로의 봄 46
별 48
흥덕왕릉 가는 길 50
올가을 비가 짧아, 차암 짧아 51
너는, 52
立夏 54
방 56
항구 58
틈 59
분홍 60
제3부
숲 62
배추의 얼굴 64
즐거운 명절 66
저녁의 게임 67
슬도가 그를 찾는다 68
편지 70
편지 72
승부 73
그녀가 내게 74
PRESTO, 75
독 76
고비의 시간으로 꽃물 번지네 78
시인 80
과거형 말은 슬프다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