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모습의 ‘대학’을 보려면 ‘원본 대학’을 읽으라
유학이 밝혀낸 ‘수증修證’의 이치가 ‘대학’에 숨어 있다
유가의 핵심과 삼천 년 역사가 ‘대학강의’에 살아 숨쉰다!
『대학』은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사서로 불리며 오랜 세월 지존의 지위를 누려 왔다. 그 역할을 한 것은 송대 이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나라의 혼란과 도덕 질서의 붕괴를 막으려면 불가와 도가에 의해 그 명맥이 사라진 유학의 가르침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공맹 이후 유학의 정통을 자신들이었다고 자부하였다. 송유宋儒인 주희는『예기』속의 대학과 중용을 따로 떼어내어,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덧붙여 제왕의 학문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후 천여 년 가까이 ‘원본’ 『대학』은 사라지고 주희의 ‘장구본’이 정통으로 군림하였다. 선현의 논리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과거 시험의 표준이 되었고 후인들의 사고를 옭죄었으며 이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유가와 도가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도통道統의 시대, 담백하고 논리정연하고 정채로운 ‘원본’ 『대학』을 강의한다. 『대학』은 내면의 학문 수양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본성을 실현하여 그것으로가까운 사람들,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함을 드러낸 책이다. 저자는 내면의 빛을 밝히자면 추상적이고 공허한 수신이 아니라 심신이 바뀌어야 함을 칠증七證의 수양 과정을 통해 제시한다. 유학이 본래 독자적으로 탐구했던 수증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제 체험을 통해 알려 주는 것이다. 심신 수양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불가와 도가가 통합된 정밀한 견해의 유학 수증 과정을 접할 수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삼천 년 중국 문화와 역사 속 인물의 수신과 치국의 삶의 명암을 그려 볼 수 있다. 또 역사와 함께 변모해 온 유학의 모습을 조감하는 소득도 거둘 수 있다.
Contents
제7편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다
44 인간 세상은 화평하게 하기 어렵다
‘천하’의 원래 의미를 이해하다|무엇을 “혈구지도”라고 하는가
45 저울은 저절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위정자가 공평하고 올바르지 않으면|먼저 ‘덕을 세워야만’ 민심을 얻을 수 있다|위정자는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재’와 ‘화’의 원래 의미|유방, 이연, 주원장의 솔직한 말
46 무대에 오르기는 쉬워도 내려오기는 어렵다
아두와 손호를 대비하다|폐하께서는 관직을 팔아 그 돈을 사문에 넣으셨습니다
47위진 남북조 시대
당시의 세 가지 관건을 이해해야 한다|오랑캐와 중화 민족의 혼합|호한 문화의 또 다른 일면|석륵과 불도징의 고사|부견, 구마라습을 얻으려 군사를 일으키다|유가는 잠잠하고 불가가 창성했던 시대
48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도리에 어긋나게 나간다
유준, 소연, 소역, 진숙보의 고사|양견과 양광 부자의 고사|그 누가 형체도 없는 인과율을 피할 수 있는가
49 인한 사람이라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남을 미워할 수 있다
증자는 「진서」를 가지고 설명했다|진 목공이 백리해를 중용하다|“건숙이 군사를 위해 울었다”는 고사|유여가 문화와 문명을 논변하다|이웃 나라의 성인은 적국의 근심거리이니|세 가지 방면에서 진 목공을 평가하다
50 의리지변의 재정 경제 학설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가 부유하고 나라가 부유하면 백성이 강해진다|재정에 치중했던 명재상과 명신|증자는 몸소 의리지변의 도를 실행하였다|공자에게 제자 자공이 없었다면|「화식열전」의 훌륭한 이론과 탁월한 식견
제8편 유학의 변화와 국가 발전
51 불가와 도가의 정수로 저술한 「정성서」
불교의 전래로부터 이학의 흥기까지|「정성서」를 잘 배웠던 강희제
52 사서오경과 중국 문화
오경박사의 시작|현학과 현담의 시대|찬란하고 운치 있었던 당대 문예|유?불?도?선과 당대 문화|백장선사와 여순양의 심원한 영향|송대 이학의 뿌리인 「원도」와 「복성서」의 출현
53 유가 경학과 당에서 오대까지의 난세 문화
오대는 제2차 남북조의 시작이었다|하늘을 향한 이사원의 축수
54 문치를 고수해 군주를 약하게 만든 송의 정책
어머니로서 예의범절이 위엄스러웠던 두 태후|개국 황제 조광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백성을 우롱했던 송 진종의 우민 정책
55 송 초의 문운과 송유의 이학
문운 전성의 원인|명성과 지위를 영광과 총애로 여기지 않습니다|진정한 유종이요 유행이었던 범중엄|범중엄이 송 초의 대유학자들을 길러 내다|북송 후기 유림의 도학 현상|성명의 학설은 자공도 듣지 못했습니다
56 남송 왕조와 사서장구
송 고종의 모순된 조서|주자의 ‘제왕의 학문’을 평하다|학이치용을 주장했던 이름난 유학자들
57 몽고의 서방 원정과 서양인의 오해
칭기즈칸은 왜 서방 원정에 나섰는가|티베트 밀교하의 유가
58 명?청의 과거 제도와 송유의 이학
주원장의 심리를 분석하다|과거로 선비를 뽑는 제도의 이로움과 폐단|양명학의 흥기|명 왕조의 정치 문화를 총결하다
59 유학을 표방하고 불가와 도가를 사용했던 청조
청이 천하를 얻은 것은 드물고 특별한 경우였다|치학에 근면했던 강희제|중국의 근심은 변방에 있었다
60 옹정제에서 건륭제까지
주야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일을 반듯하게 처리하다”|옹정제는 어떻게 평천하하였는가|대선사가 불교를 정리하다|천하를 장악한 채 가업을 발전시켰던 뛰어난 인재|완벽한 노인 건륭제
제9편 서양 문화와 중국
61 서양 문화의 변천을 조감하다
명?청 무렵의 동서 문화 교류|청 초 이래 서양 국가의 중대한 변혁|미국 문화와 미국식 맹주
62 반성하고 검토해야 할 세 가지 큰 문제
국제 형세에 관한 문제|서양 문화와 문명|인문 문화와 정치 사회에 관하여
63 중국은 평화 공존의 세계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