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꼭읽어야 할 인문고전 한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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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6001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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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5/11/30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60010055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역사/인물
Description
꼭 읽어야할 인문고전 시리즈는 현행 제7차 교육 과정 사회 및 역사 교과서에서 자주 나오는 작품을 기준으로 국내 대학 소장파 학자들이 선별하여 집필한 시리즈로 창의적 사고를 키워 줄 수 있는 청소년 교양, 수능, 논술 대비에 필요한 중요 작품이 들어 있다.

원전 중심으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현대식 문장으로 표현하되, 방대한 내용의 작품에 대해서는 엄선하여 선별하였고 어려운 고전 텍스트를 알기 쉽게 편집함으로써 본문을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읽기 전에 작품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 및 작품의 특성을 제시하였고 텍스트 중심에서 벗어나 본문의 심층적인 이해와 입체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관련 이미지가 실려있다. 본문에 나오는 어려운 낱말이나 한자, 어구는 따로 사전을 찾아볼 필요 없이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풍부한 내용의 낱말풀이와 참고자료 수록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수령의 지침서로 지은 책이다.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解配)되던 해인 1818년에 완성한 것으로, 우리 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자(子)·집(集) 등에서 치민(治民)과 관련된 자료를 뽑아 수록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Author
정약용,장시광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