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계몽운동은 민중교화(敎化)를 위한 문자보급운동을 떠올린다. 이는 일제 강점기 농민이 민중의 대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문맹퇴치가 급선무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몽의 본질은 몽매한 대중에게 지식을 보급하고 의식을 개혁하는 데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의 계몽운동은 개항 이후 근대 학문이 형성되면서 각종 단체가 출현한 데서 출발한다. 독립협회가 조직되고 근대식 학교의 학생 단체가 출현하며, 일본으로 관비 유학생을 파견하고, 아울러 각종 지식 전파 매체가 출현하면서 계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국권 침탈기에는 지식층과 학생을 중심으로 각종 학회가 등장하고, 국권 침탈에 맞서 ‘애국’과 ‘민족’을 환기하는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이른바 ‘애국 계몽기’라고 부른다.
계몽운동은 ‘지식 보급’과 ‘의식 개혁’ 차원에서 교육과 대중 운동(출판, 강연 등)을 주요 수단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계몽운동’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을지라도 근현대 교육운동사를 주제로 한 연구는 계몽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일제 강점기의 계몽운동은 지식 보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중운동을 포함한다. 애국 계몽기의 민족운동으로부터 교육운동, 학생운동, 종교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국학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운동은 모두 계몽성을 띤 운동들이었다.
1920년대 해방운동은 억압의 본질과 해방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운동으로 나타난다.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이 주를 이루던 1920년대 전반기에도 각종 청년운동, 소작쟁의, 부인운동 등의 명칭으로 사회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동아일보] 1925년 1월 1일자 적성산인의 ‘조선 사회운동 개관: 과거 일 년 간의 사회상’에 정리된 바와 같이, ‘사상운동’, ‘노농운동’, ‘청년운동’, ‘형평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해방운동은 본질적으로 계몽철학의 기반을 이루는 ‘자유’와 ‘평등’,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이성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정치·사회적 현실은 자유와 평등, 개성과 진보를 쉽게 허용하는 체제가 아니었다. 계몽 담론이 이러한 이상을 부르짖는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식민 체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더욱이 계몽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도 민중에 대한 신뢰, 민족의 앞날에 대한 신념이 확실하지 못할 경우가 많았다. 일제의 식민 정책과 계몽에 대한 불확실성은 일제 강점기 계몽운동의 방향이 모호하거나 이질적인 계몽운동이 착종되는 현상을 가져오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Contents
제1장 일제 강점기 계몽운동의 실제: 독본 자료를 중심으로 [허재영]
1. 일제 강점기 계몽운동의 특징
2. 일제 강점기 지식 보급과 계몽운동 교재
3. 계몽운동의 방법과 교재 개발
4. 농촌 지식 보급 방법과 식민 시대 농민문고
제2장 청년 계몽과 수양론 [강미정]
1. 일제 강점기 청년 담론
2. 청년 계몽서의 내용과 청년 담론
3. 식민 통치와 청년 계몽
제3장 노농단체의 야학운동과 노농독본 [윤금선]
1. 노농단체의 야학운동
2. 노농독본의 실제
3. 야학운동의 의의와 노농독본의 성격
제4장 언론 활동과 문자보급운동 [김슬옹]
1. 언론사 문자보급운동의 배경
2. 언론사의 한글운동과 문맹퇴치운동
3. 문자보급운동 교재 분석
4. 문자보급운동의 의의와 한계
제5장 식민 통치와 계몽 정책 [김정애]
1. 일제의 사회교화 정책과 농민계몽의 본질
2. 식민지 사회교화와 농촌 계발 논리
3. 식민지 농업 정책과 농촌 계발 관련 자료
4. 식민 통치를 위한 계몽서
Author
허재영,강미정,윤금선,김슬옹,김정애
건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초빙교수.<문학치료를 위한 구비설화 활용 방식에 대한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이 있음
건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초빙교수.<문학치료를 위한 구비설화 활용 방식에 대한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