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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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2/03/23
Pages/Weight/Size 130*210*20mm
ISBN 9788958721109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고전은 오랜 세월 동안 의미와 향기가 퇴색하지 않은 문헌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오래되었으나 좋은 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전은 대부분 수백 년 전 다른 환경에서 생겨난 문헌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와는 시공간적 차이가 크다. 바로 이 점에 고전 읽기의 특징이 있다. 모든 고전은 이중적 독해가 가능하다.

한편으로 고전은 ‘오래된 책’이기에 역사서와 같은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책’이기에 지금 여기와 무관하면 안 된다. 무릇 고전이라면 이 두 가지 측면을 다 갖추고 있겠지만, 독해하는 데 따라서는 어느 측면이 특별히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토머스 페인의 이 고전이 단순한 고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행한 일이다.

페인은 《상식》에서 군주제를 비판하고 공화제만이 미국이 갈 길이라고 주장하며,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혁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구체적으로는 영국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의견에 대한 논박, 독립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논증, 세습 군주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 대의제에 따른 정치적 대표기관의 구성방법 등에 대해 사회계약론에 입각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즉 영국이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고,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수립이 상식이라고 최초로 주장하여 그것을 달성하게 한 책이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상식’은 식민지를 의식화한 불온서적 중의 불온서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책으로 평가받았다.
Contents
상식
서문
정부 일반의 기원과 취지, 그리고 영국 제도에 관한 간략한 고찰
군주제와 권력 세습에 관하여
아메리카의 현재 상태에 관한 고찰
현재 아메리카의 힘에 관한 몇 가지 잡다한 생각
부록

토지 분배의 정의
영어판 서문
토지 분배 정의
기금을 조성하는 방법
제안된 계획을 실행하고 공익에 이바지하도록 만들기 위한 수단

옮긴이의 말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상식이 이상인 사회

토머스 페인이 살아온 길
Author
토머스 페인,남경태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시기의 사상가, 언론인, 저술가, 정치혁명가로서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조지 워싱턴 등 미국 초기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페인은 173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코르셋 장인이 됐다. 이후 교사, 담배업자, 하급 세무공무원 등으로 취업과 해직을 되풀이했다. 1772년에는 세무관료의 부패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의 보수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세무서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1774년 페인은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만난 벤저민 프랭클린의 권유로 아메리카로 갔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매거진>에서 일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을 지지하는 여러 편의 팸플릿을 발표했다. 그중 1776년 1월에 발표돼 15만 부나 팔린 팸플릿 《상식》은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의 자주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 것으로 6개월 뒤 <독립선언문>이 나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 이후 잠시 정치에서 물러나 있던 페인은 1787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1790년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자 이에 반박해 1791년과 1792년 두 차례에 걸쳐 《인권》을 발표했다. 프랑스혁명을 옹호하고 영국인들에게 공화국을 세울 것을 호소한 이 글로 인해 페인은 영국에서 반역자로 몰려 법익을 박탈당하고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했다. 이후 프랑스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혁명세력에 동참해 활동하다가, 루이 16세의 처형을 반대한 이유로 룩셈부르크 감옥에 투옥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함께 석방되었다.

1802년 페인은 제퍼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너무도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던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질시를 받았다. 결국 페인은 과거 독립혁명의 영웅이 아니라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당하다가 1809년 빈곤과 고독 속에서 파란 많은 생을 마쳤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시기의 사상가, 언론인, 저술가, 정치혁명가로서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조지 워싱턴 등 미국 초기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페인은 173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코르셋 장인이 됐다. 이후 교사, 담배업자, 하급 세무공무원 등으로 취업과 해직을 되풀이했다. 1772년에는 세무관료의 부패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의 보수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세무서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1774년 페인은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만난 벤저민 프랭클린의 권유로 아메리카로 갔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매거진>에서 일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을 지지하는 여러 편의 팸플릿을 발표했다. 그중 1776년 1월에 발표돼 15만 부나 팔린 팸플릿 《상식》은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의 자주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 것으로 6개월 뒤 <독립선언문>이 나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 이후 잠시 정치에서 물러나 있던 페인은 1787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1790년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자 이에 반박해 1791년과 1792년 두 차례에 걸쳐 《인권》을 발표했다. 프랑스혁명을 옹호하고 영국인들에게 공화국을 세울 것을 호소한 이 글로 인해 페인은 영국에서 반역자로 몰려 법익을 박탈당하고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했다. 이후 프랑스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혁명세력에 동참해 활동하다가, 루이 16세의 처형을 반대한 이유로 룩셈부르크 감옥에 투옥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함께 석방되었다.

1802년 페인은 제퍼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너무도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던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질시를 받았다. 결국 페인은 과거 독립혁명의 영웅이 아니라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당하다가 1809년 빈곤과 고독 속에서 파란 많은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