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Print

완역 이옥 전집

$146.88
SKU
9788958622796

 

본 상품은 품절 / 절판 등의 이유로 유통이 중단되어 주문이 불가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4/25 - Thu 05/1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4/22 - Thu 04/24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09/03/09
Pages/Weight/Size 153*224*70mm
ISBN 9788958622796
Categories 인문 > 인문/교양
Description
총 다섯 권의 「완역 이옥 전집」은 세 권의 번역본과 두 권의 자료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번역본은 김려의 《담정총서》에 흩어져 있던 이옥의 글들과 각기 전하는 4편(《이언(俚諺)》, 《동상기(東床記)》, 《백운필(白雲筆)》, 《연경(烟經)》)의 글을 수록하였다.

이옥 글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생생한 저잣거리의 이야기에 있다. 특히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거개가 하층 여성, 천한 노비, 도적, 저잣거리의 다양한 인물군상, 그리고 생활 주변의 자잘한 사물들이다. 또한, 있는 그대로 대상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그의 글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거울 역할을 한다.

심생의 사랑 이야기, 정운창과 성 진사, 최 생원, 부목한, 류광억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물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질 뿐 아니라 조선 후기 향촌 사회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Contents
1권


서 · 발

논 · 설 · 해 · 변 · 책

2권
문여1 - 봉성문여
문여2 - 잡제

이언
희곡 - 동상기
부록 - 김려의 제후

3권
백운필
소서
갑-새 이야기
을-물고기 이야기
병-짐승 이야기
정-벌레 이야기
무-꽃 이야기
기-곡식 이야기
경-과일 이야기
신-채소 이야기
임-나무 이야기
계-풀 이야기

연경
서문
1-연초재배
2-담배의 유래와 성질
3-담배 도구
4-담배의 쓰임

4권
1
2
3
Author
이옥,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이옥(李鈺, 1760~1815)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문필 활동을 한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字)는 기상(其相)이며, 문무자(文無子)매화외사(梅花外史)화석산인(花石山人)을 비롯한 많은 호를 사용했다. 그는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하여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이 출제한 문장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과(日課)로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지어 옛 문체를 완전히 고친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것을 허용한다는 징벌을 받았고, 또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充軍)을 당한 쓰라린 체험도 하였다. 문체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막혀버렸지만, 그의 문체를 고치지 않았고 신념을 지켰으며 이후 문학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체와 내용을 고집함으로써 군주로부터 견책을 당할 만큼 독특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러한 그만의 창작 방식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
이옥(李鈺, 1760~1815)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문필 활동을 한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字)는 기상(其相)이며, 문무자(文無子)매화외사(梅花外史)화석산인(花石山人)을 비롯한 많은 호를 사용했다. 그는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하여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이 출제한 문장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과(日課)로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지어 옛 문체를 완전히 고친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것을 허용한다는 징벌을 받았고, 또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充軍)을 당한 쓰라린 체험도 하였다. 문체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막혀버렸지만, 그의 문체를 고치지 않았고 신념을 지켰으며 이후 문학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체와 내용을 고집함으로써 군주로부터 견책을 당할 만큼 독특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러한 그만의 창작 방식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