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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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9/03/09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58622765
Categories 인문 > 인문/교양
Description
저잣거리의 인정과 풍물을 진솔하게 그려낸 18세기 소품 문학의 결정체를 만나다!

18세기 소품 문학을 풍부하게 일군 문인 이옥의 작품. 18, 19세기에 융성했던 소품 문학은 이제껏 다루어지지 않은 존재들, 즉 여성과 중인, 평민들을 비롯해 풀과 물고기, 새, 그리고 담배 같은 기호품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옥은 이들 소품 문학의 역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는 성리학적 사고에 치우친 글쓰기에서 벗어나 시속의 변화와 개인의 서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소품에서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창작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1권은 김려가 남긴 이옥의 글을 부(賦)·서(序)·발(跋)·기(記)·논(論)·설(說)·해(解)·변(辨)·책(策) 등 전통적 장르로 재구성하여 싣고 있으며, 2권은 문여(文餘)와 잡제(雜題)·전(傳)으로 정리한 글들을 비롯해 조선의 방언과 여성에 주목한 《이언》, 그리고 희곡 《동상기》 등 실험성 짙은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3권에는 최근 발견된 《백운필》과 《연경》이 실려 있는데, 특히 《백운필》은 국내 최초 번역이어서, 그 가치가 상당하다.

4권과 5권은 자료편으로, 4권에는 표점 교감을 하고 컴퓨터 활자본으로 입력한 원문(原文)을 번역본의 순서대로 싣고 있다. 5권은 번역문의 저본(底本)이 된 자료를 영인(影印)한 것으로, 통문관 소장의 《담정총서》에서 뽑아온 것들과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 및 영남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옥의 글들을 모았다.
Contents
백운필
소서
갑-새 이야기
을-물고기 이야기
병-짐승 이야기
정-벌레 이야기
무-꽃 이야기
기-곡식 이야기
경-과일 이야기
신-채소 이야기
임-나무 이야기
계-풀 이야기

연경
서문
1-연초재배
2-담배의 유래와 성질
3-담배 도구
4-담배의 쓰임
Author
이옥,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이옥(李鈺, 1760~1815)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문필 활동을 한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字)는 기상(其相)이며, 문무자(文無子)매화외사(梅花外史)화석산인(花石山人)을 비롯한 많은 호를 사용했다. 그는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하여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이 출제한 문장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과(日課)로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지어 옛 문체를 완전히 고친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것을 허용한다는 징벌을 받았고, 또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充軍)을 당한 쓰라린 체험도 하였다. 문체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막혀버렸지만, 그의 문체를 고치지 않았고 신념을 지켰으며 이후 문학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체와 내용을 고집함으로써 군주로부터 견책을 당할 만큼 독특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러한 그만의 창작 방식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
이옥(李鈺, 1760~1815)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문필 활동을 한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字)는 기상(其相)이며, 문무자(文無子)매화외사(梅花外史)화석산인(花石山人)을 비롯한 많은 호를 사용했다. 그는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하여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이 출제한 문장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과(日課)로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지어 옛 문체를 완전히 고친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것을 허용한다는 징벌을 받았고, 또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充軍)을 당한 쓰라린 체험도 하였다. 문체로 인하여 관직 진출이 막혀버렸지만, 그의 문체를 고치지 않았고 신념을 지켰으며 이후 문학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체와 내용을 고집함으로써 군주로부터 견책을 당할 만큼 독특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러한 그만의 창작 방식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