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사이에 두고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왕성하게 소통해온 불교와 유교! 이 미증유의 만남을 통해
알차게 결실을 맺은 새로운 융합 사상의 진면목!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유교와 불교의 회통적 사유가 『논어』에서 구현된 양상을 꾸준히 연구해온 이영호 교수가 『논어, 천년의 만남』을 펴냈다. 중국사상사의 이단아 이탁오(이지)의 『논어평』을 완역하고, 장대의 『논어우(論語遇)』와 지욱선사의 『논어점정(論語點睛)』에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들을 취사선택하고 번역작업을 했다.
먼저 이지(李贄, 1527~1602)는 양명좌파 경학의 정점에 있는 학자인데, 이름보다 그의 호인 탁오(卓吾)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저서인 『분서(焚書)』에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분명하게 드러낸 바 있으며, 이러한 그의 사유는 경학 저술인 『논어평(論語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지는 이 책에서 불교 용어를 차용하여 『논어』를 설명하면서, 『논어』의 문답이나 내용 등을 선(禪)의 언어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즉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선어(禪語)로 보았기에 공자의 형상이나 심상을 묘사할 때, 종종 선사의 그것과 합치시키게 된 것이다.
『논어평』에 담겨 있는 유불회통적 사유는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전해져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지의 경학적 사유를 계승한 이들 가운데, 유가에서는 장대(張岱, 1597~1689?), 불가에서는 지욱선사(智旭禪師, 1599~1655)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논어』 주석에는 이지의 『논어평』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유불회통적 사유 또한 심화시켜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는 명말 청초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산문작가로, 양명좌파의 경학을 계승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또한 지욱은 명나라 말기의 사대고승 중 한 사람으로 선종, 교종, 율종의 조화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의 교리로 유교의 경전을 해설한, 『논어점정(論語點睛)』, 『주역선해(周易禪解)』 등은 동아시아 종교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교와 유교의 만남은 B.C. 2년경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 이때 불교는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그후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구마라즙과 현장 등의 언어 천재들이 인도어로 된 불경들을 중국어(한문)로 번역작업을 한 덕분에, 불교는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불교와 유교의 만남은 단순하게 끝나지 않았다. 이 두 사상은 낯선 만남을 통해 예상 못한 조류를 형성하여, 불교와 유교에서 공히 새로운 융합 사상이 등장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불교에서는 선종(禪宗)을, 유교에서는 주자학(朱子學)과 양명학(陽明學)을 거론할 수 있다.
1527~1602. 자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陵居士). 명나라의 저명 양명학자로서 강학과 저술을 통해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년에 불교를 넘나들면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구축하였다. 저서로 『분서(焚書)』, 『장서(藏書)』, 『사서평(四書 評)』등이 있다.
1527~1602. 자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陵居士). 명나라의 저명 양명학자로서 강학과 저술을 통해 사상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말년에 불교를 넘나들면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구축하였다. 저서로 『분서(焚書)』, 『장서(藏書)』, 『사서평(四書 評)』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