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후, 추모를 넘어선 담론의 장이 서울 신촌 거리 한복판에서 열렸다. 이 책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담담하면서도 절절했던 그 8시간의 기록이다. 대독을 포함해서 40여 명의 자유발언자들은 성추행, 성폭력 경험부터 외모로 인한 압박과 옷차림에 대한 검열, 대중교통에서 겪는 문제, 여전히 가족 내에서 존재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 등을 힘겹게 고백하며,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 사회의 실상에 대해,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산다는 것,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페미니즘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하는 책이다.
Contents
들어가며 / 말하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두려움을 떨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닥이고 절벽입니다.
어렸을 때도 ‘여성스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제가 여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범죄에 복장과 시간을 들먹이는 건 좋은 변명의 구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혐오의 화살은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향합니다.
가해자의 꿈을 언급합니다. 그들에게 여성 피해자는 없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결코 개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여자가 안 된다고 말할 때는 안 되는 겁니다.
성추행을 안 당해본 여자는 없습니다.
살인범이 아니라 살해당한 여성에게 동일시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당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데 없는 일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남자친구는 저를 달래주면서 “네가 예뻐서 그렇다”라고 했습니다.
피해자의 무너진 삶보다 가해자가 살아갈 삶을 걱정하는 사회가 두렵습니다.
혐오는 야만적인 얼굴이 아니라 친절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도 작동됩니다.
능력이나 소망에 따라서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저는 여직원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처신 똑바로 하고 다니라고.
문고리를 걸어 잠그는 것 말고는 저를 방어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치마를 입고, 빨간 입술도 하고 싶습니다.
일부 남성의 책임이 아닙니다. 모든 남성이 책임의 일부입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에는 머리가 하얘져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 증오의 밤을.
밤늦게 들어온 저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정신을 놓고 때렸습니다.
여자라서 폭행을 당하고. 여자라서 강간을 당하고 .
‘살아남았다’는 해시태그와 ‘억울하다’는 말에 대하여.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떠들 것입니다. 저를 침묵시킬 순 없습니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건 피해 고백이 아니라 가해 고백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 이제 그만 듣고 싶습니다.
부단히 해야 했던 변명들이 제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과연 언제쯤 이 액땜을 끝낼 수 있을까요?
벗고 있든 아니든, 우리가 뭘 하고 있든 만져서도 안 되고 우리를 죽이면 안 돼요.
학교 다닐 때 규정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발목양말 금지였습니다.
남자애들은 원래 덜렁거리니까 여자애들이 이해해줘야 한다니요!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정말 짜증나고 슬펐습니다.
무언가 정말 많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여자답게 굴라고 강요할 수 없어, 나는 이미 여자니까.
저와 여동생과 남동생은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선언문 /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해제 /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_ 권김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