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 샤캬파의 전승조사이다. 한문으로는 무착 대사無著大師라 한다. 1295년 티베트 서부 샤캬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출가하여 29세에 비구계를 받은 후,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스승으로부터 대원만의 교법을 학습하고 실수행의 선관을 지도받아 대성취를 이루었다.
32세 때 불법을 펴기 위하여 경전을 강의하였는데, 주로 『현관장엄론』, 『인명론』, 『아비달마잡사집』, 『대승장엄경론』, 『보성론』, 『입보리행론』 등을 강의하였다.
견혜堅慧 역경대사가 무착 대사를 평하되 “티베트에 있어서 『입보리행론』에 제일 정통한 자는 궈랑빠 대사와 무착 대사 2인으로, 이론에 대한 이해는 대사와 비교할 자가 없으며, 이 두 사람의 사상 중에 이론의 온전한 의의가 갖춰져 있다.”라고 하였다.
무착 대사의 발심이 매우 광대하였기 때문에 각 종파의 수행인은 그를 매우 존중했고 그의 교언 중에 지혜가 솟아나는 것을 사모하였다. 특히 대사가 지은 『불자행 37송』에 대한 찬탄이 끊이지 않아 세간에서 애독되었다.
티베트 불교 샤캬파의 전승조사이다. 한문으로는 무착 대사無著大師라 한다. 1295년 티베트 서부 샤캬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출가하여 29세에 비구계를 받은 후,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스승으로부터 대원만의 교법을 학습하고 실수행의 선관을 지도받아 대성취를 이루었다.
32세 때 불법을 펴기 위하여 경전을 강의하였는데, 주로 『현관장엄론』, 『인명론』, 『아비달마잡사집』, 『대승장엄경론』, 『보성론』, 『입보리행론』 등을 강의하였다.
견혜堅慧 역경대사가 무착 대사를 평하되 “티베트에 있어서 『입보리행론』에 제일 정통한 자는 궈랑빠 대사와 무착 대사 2인으로, 이론에 대한 이해는 대사와 비교할 자가 없으며, 이 두 사람의 사상 중에 이론의 온전한 의의가 갖춰져 있다.”라고 하였다.
무착 대사의 발심이 매우 광대하였기 때문에 각 종파의 수행인은 그를 매우 존중했고 그의 교언 중에 지혜가 솟아나는 것을 사모하였다. 특히 대사가 지은 『불자행 37송』에 대한 찬탄이 끊이지 않아 세간에서 애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