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벽두에 출간된 피넬의 『의학철학 논고』는 당대 문학가, 철학자, 예술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음은 물론 인간과 인간의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자극했던데 비해, 정작 프랑스는 물론 정신의학계에서도 피넬에 대한 세심하고 심도 깊은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의학철학 논고』의 현대 고증 판본은 장 가라베와 도라 바이너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2005년에 출판한 것이 유일하다. 이 판본은 피넬이 나중에 대폭 수정한 2판을 대상으로 삼은 것인데, 초판과의 비교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넬에 관한 묵직한 연구서 『이해하기와 치료하기』의 저자 도라 바이너는 동시대 의학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환자들을 임상적으로 관찰하고 자료를 축적하면서 결국 “정신이상을 의학의 한 분과로 통합”하는 데 이른 피넬의 공적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신의학계에서는 그의 어휘와 치료법을 ‘낡은’ 것으로 취급하고, 역사학에서는 그의 업적을 ‘박애주의’로 규정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음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의학철학 논고』는 단순히 정신의학의 고전으로 다루기에 앞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지성사의 고전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피넬이 이 책에 붙인 상당히 긴 분량의 서론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무엇보다 계몽주의 시대와 프랑스 혁명기의 의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19세기 초반의 관념학자들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존 로크와 콩디야크가 다루었던 경험주의와 감각주의, 엘베시우스와 디드로의 유물론적 인간관, 18세기 후반 몽펠리에 의학자들로부터 자비에 비샤에 이르는 생기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피넬의 저작은 단지 광인들에 대한 박애주의적 태도로 축소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피넬이 다루는 광기의 원인으로서의 ‘지성의 상해’ 이론은 앞서 언급한 계몽주의 시대 인식론을 직접적으로 정신의학 분야에 확장한 것으로서의 의미가 깊다.
Contents
1부 주기적이거나 간헐적인 조광증
2부 정신이상자들의 정신적 치료법
3부 정신이상자들의 두뇌 구조의 결함에 관련된 해부학적 연구들
4부 뚜렷이 구분되는 정신이상의 분류
5부 정신이상자 구제원에서 세워야 할 내부 규칙과 감시
6부 정신이상자들의 의학 치료의 원칙
부록: 2판의 추가 사항
1부 정신이상 여부를 결정하는 데 적합한 이유들
2부 정신이상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특징
3부 다양한 정신이상의 구분
4부 정신이상자를 위한 시설에서 따라야 할 내적 규칙과 규정들
5부 정신이상자들의 의학 치료에 대한 고대와 현대의 경험의 결과
6부 관찰 결과와 정신이상자들의 치료 확률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기 위한 표의 구성
7부 선천적 기형이나 다른 원인들 때문에 치료 불가능한 정신이상의 경우
옮긴이 해제
Author
필립 피넬,이충훈
툴루즈 대학과 몽펠리에 대학의 의학부를 차례로 거쳐, 의사로서의 성공을 위해 파리로 상경했다. 이삼십대 중반에 파리에 올라온 그는 수학을 좋아했고, 또 파리의 궁핍한 생활을 수학 과외로 견뎌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의사이자 질병분류학자였던 윌리엄 컬런을 만나서 우정을 쌓았던 것도 이 시기였다.
몽펠리에 대학 의학부 교수로 있었던 의사이자 식물학자 부아시에 드 소바주(Boissier de Sauvages)의 질병분류학(la Nosologie)을 깊이 공부했던 피넬은 스승의 분류법의 오류를 정정하여 1798년에 그의 주저 『철학적 질병분류학, 혹은 의학에 적용된 분석의 방법Nosographie philosophique, ou la methode de l’analyse appliquee a la medecine』을 두 권으로 출판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800년에 비세트르 구제원의 수석의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본서 『정신이상 혹은 조광증의 의학철학 논고』의 초판을 출간한다. 다시 2년 후 출간한 『분석의 방법을 통해 더욱 정확해지고 더욱 간명해진 임상의학: 살페트리에르에서 수행한 급성질환의 관찰 모음과 결과La medecine clinique rendue plus precise et plus exacte par l’application de l’analyse: recueil et resultat d’observations sur les maladies aigues, faites a la Salpetriere』는 앞의 두 저작과 함께 피넬의 3대 저작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툴루즈 대학과 몽펠리에 대학의 의학부를 차례로 거쳐, 의사로서의 성공을 위해 파리로 상경했다. 이삼십대 중반에 파리에 올라온 그는 수학을 좋아했고, 또 파리의 궁핍한 생활을 수학 과외로 견뎌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의사이자 질병분류학자였던 윌리엄 컬런을 만나서 우정을 쌓았던 것도 이 시기였다.
몽펠리에 대학 의학부 교수로 있었던 의사이자 식물학자 부아시에 드 소바주(Boissier de Sauvages)의 질병분류학(la Nosologie)을 깊이 공부했던 피넬은 스승의 분류법의 오류를 정정하여 1798년에 그의 주저 『철학적 질병분류학, 혹은 의학에 적용된 분석의 방법Nosographie philosophique, ou la methode de l’analyse appliquee a la medecine』을 두 권으로 출판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800년에 비세트르 구제원의 수석의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본서 『정신이상 혹은 조광증의 의학철학 논고』의 초판을 출간한다. 다시 2년 후 출간한 『분석의 방법을 통해 더욱 정확해지고 더욱 간명해진 임상의학: 살페트리에르에서 수행한 급성질환의 관찰 모음과 결과La medecine clinique rendue plus precise et plus exacte par l’application de l’analyse: recueil et resultat d’observations sur les maladies aigues, faites a la Salpetriere』는 앞의 두 저작과 함께 피넬의 3대 저작으로 높이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