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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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11/27
Pages/Weight/Size 128*188*30mm
ISBN 9788957336113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심오한 사상이란 모호한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명료한 사상이다

『선악의 저편』은 1886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미래 철학의 서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과 부제가 시사하듯이 니체는 이 책에서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전통적인 철학을 넘어서 새로운 미래 철학을 개척하고 있다.

니체는 서양의 예술과 철학 그리고 종교 등 서양인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고 있는 문화는 형이상학적·인간학적·윤리학적 이원론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형이상학적 이원론은 세계를 영원불변의 초감성적인 실재 세계와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감성적인 현상 세계를 구별하거나, 초감성적인 근원적인 일자와 감성적인 다양한 개체들을 구별한다. 인간학적 이원론은 인간의 영혼을 보편적인 선을 지향하는 순수정신과 이기적이고 저열한 본능적인 욕망으로 나눈다. 윤리학적 이원론은 선과 악을 서로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형이상학적 이원론은 생성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염증과 그러한 세계로부터의 도피를 유발하면서 현실에 대한 염세주의적인 태도를 조장한다. 인간학적 이원론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죄악시하면서 인간에게 죄의식을 불어넣음으로써 스스로를 학대하게 하는 병적인 태도를 조장한다. 윤리학적 이원론은 고통과 고난을 악으로 간주하고 고통과 고난을 제거하는 것을 선으로 간주함으로써 고통과 고난을 두려워하는 연약한 태도를 조장한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이원론 대신에 생성 소멸하는 세계만을 실재 세계로 인정하는 일원론의 입장을 취한다. 이와 함께 그는 인간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생성 소멸하면서 인간에게 기쁨과 아울러 고통을 선사하는 이 세계를 흔연히 긍정하는 생명력으로 충일한 정신을 육성하려고 한다.

니체는 또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하고 싶어 하는 힘에의 의지라는 본능적 의지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보는 인간학적 일원론의 입장을 취한다. 이와 함께 그는 인간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비하하면서 학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건강한 방식으로 강화하고 고양시킬 것을 촉구한다.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이른바 순수정신에 의해서 성욕이나 지배욕 그리고 승부욕과 같은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들을 절도 있게 발현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Contents
옮긴이 서문
저자 서문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제2장 자유정신
제3장 종교적인 것
제4장 잠언과 간주곡
제5장 도덕의 박물학
제6장 우리 학자들
제7장 우리의 미덕
제8장 민족과 조국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높은 산에서―후곡(後曲)

옮긴이 해제
Author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