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론

신의 선,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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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4/07/31
Pages/Weight/Size 153*224*40mm
ISBN 9788957333716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악의 법정에 선 ‘신의 변호인’이 ‘교양인’을 대상으로 집필한 대중적 대작

‘신’은 서양 근대철학의 역사에서 매우 까다롭고도 본질적인 문제다. 국내 최초로 완역된 『변신론』은 신의 변호인 라이프니츠가, 신학이 이성의 논박에 답할 수 없다는 회의론적 입장을 견지한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벨과 벌이는 사상적 논쟁을 주로 담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한 책임을 신이 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악의 존재가 이 세상의 창조주인 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며 신을 변호한다.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철학체계 전반을 한데 모아 대중에게 내놓은 『변신론』은 서양 근대철학의 복합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넓은 지평을 열어주는 고전이다.
Contents
- 목차
- 변신론
머리말
신앙과 이성의 조화에 관한 서설

제1부
제2부
제3부

- 부록
형식 논증으로 축약된 논쟁의 개요
자유, 필연, 우연에 관하여 홉스가 출간한 영문 저작에 관한 고찰
얼마 전 영국에서 출간된 악의 기원에 관한 책 평가

- 신의 정의와 그의 다른 모든 완전성 및 행동과의 조화를 통해 제시된 신의 행동 근거

- 저작에 포함된 주제의 목록

옮긴이 해제
번역 노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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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이근세
1646년에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법률가이자 도덕철학 교수인 아버지 프리드리히 라이프뉘츠와 명망있는 법률가의 딸인 어머니 카테리나 슈무크 사이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는 대학에서 주로 철학 공부를 하였으며 1663년에 『개네의 원리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학부를 마치고 알트도르프 대학으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1667년에 『결합술에 대한 논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마친 후 잠시동안 뉘른베르크에서 라이문트 룰루스의 위대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황금 십자단의 사무원으로 있었다. 이후 마인츠의 선제후의 위촉으로 1668년부터 1672년까지 중세 교회법인 '코르푸스 유리스'를 개조하여 모든 기독교 국가의 공동법전으로 만들려는 작업과 신구교의 기독교 종파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하였다. 1672년에는 루이 14세로 하여금 이집트를 원정하도록 설득하려는 외교적 목적을 띠고 파리를 방문하여 1676년까지 체류하면서 미적분을 발견하고, 사칙연산용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1676년부터 말년까지 약 40여년간은 하노버 궁정의 고문관 및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데 처으에는 왕실에서 운영하는 하르츠 광산에 배수시설을 설치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뒤 1685년부터는 와실인 벨펜하우스가의 역사를 서술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기간에는 하노버 궁정의 위촉으로 마인츠 시절에 손댔던 신구교 종파를 통합하려는 작업과 함께 복음주의 내의 종파를 결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사료 검증을 위해 남부 독일, 빈, 로마, 나폴리 등을 여행하면서 프로이센 아카데미, 제국 아카데미, 작센 아카데미, 러시아 아카데미 등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하였고 로마에서 예수회의 중국선교사들을 만나 중국과의 학술 교류 및 개신교 선교를 계획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의 갱에서 나온 물질들의 연구를 토대로 하여 지구의 자연사인 『프로토게아』를 서술하였다. 또한 하노버 궁정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형이상학 논고』, 『변신론』, 『모나드론』을 비롯한 많은 철학적 저작을 저술한다.
1646년에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법률가이자 도덕철학 교수인 아버지 프리드리히 라이프뉘츠와 명망있는 법률가의 딸인 어머니 카테리나 슈무크 사이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는 대학에서 주로 철학 공부를 하였으며 1663년에 『개네의 원리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학부를 마치고 알트도르프 대학으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1667년에 『결합술에 대한 논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마친 후 잠시동안 뉘른베르크에서 라이문트 룰루스의 위대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황금 십자단의 사무원으로 있었다. 이후 마인츠의 선제후의 위촉으로 1668년부터 1672년까지 중세 교회법인 '코르푸스 유리스'를 개조하여 모든 기독교 국가의 공동법전으로 만들려는 작업과 신구교의 기독교 종파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하였다. 1672년에는 루이 14세로 하여금 이집트를 원정하도록 설득하려는 외교적 목적을 띠고 파리를 방문하여 1676년까지 체류하면서 미적분을 발견하고, 사칙연산용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1676년부터 말년까지 약 40여년간은 하노버 궁정의 고문관 및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데 처으에는 왕실에서 운영하는 하르츠 광산에 배수시설을 설치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뒤 1685년부터는 와실인 벨펜하우스가의 역사를 서술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기간에는 하노버 궁정의 위촉으로 마인츠 시절에 손댔던 신구교 종파를 통합하려는 작업과 함께 복음주의 내의 종파를 결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사료 검증을 위해 남부 독일, 빈, 로마, 나폴리 등을 여행하면서 프로이센 아카데미, 제국 아카데미, 작센 아카데미, 러시아 아카데미 등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하였고 로마에서 예수회의 중국선교사들을 만나 중국과의 학술 교류 및 개신교 선교를 계획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의 갱에서 나온 물질들의 연구를 토대로 하여 지구의 자연사인 『프로토게아』를 서술하였다. 또한 하노버 궁정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형이상학 논고』, 『변신론』, 『모나드론』을 비롯한 많은 철학적 저작을 저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