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과학적 지식의 기능 원리를 탐구하고 제시했다면, 『영원한 평화』에서는 인류 공존공영의 기반인 ‘영원한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논구한다. 칸트는 이 책에서 국제법상의 평화조약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 원리’를 밝혀 설명하고자 한다. 이후에 다시 한 번 그 법이론적 이념을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의 ‘국제법’과 ‘세계시민법’의 체제 안에서 해설한 바 있고, 말년의 저술 『학부들의 싸움』에서 ‘인간의 권리’ 보증과 인간의 진보는 영원한 평화 위에서만 기대될 수 있는 것임을 역설했다.
Contents
책을 펴내면서
제1부 『영원한 평화』 해제
영원한 평화를 위한 칸트의 철학적 기획
칸트 평화론의 의의
‘영원한 평화’의 이념과 실현 원리
현실적인 국가 관계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
영원한 평화를 위한 기획안
‘영원한 평화’는 공법적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해제와 주해에서 우리말 제목을 사용한 칸트 원논저 제목[약호], 이를 수록한 베를린 학술원판 전집[AA] 권수(와 인용 역본)
『영원한 평화』 관련 주요 문헌
1. 원전의 주요 판본
1) 칸트의 원판본
2) 칸트 사후 주요 편집본
3) 평화사상과 관련 있는 칸트의 여타 저술들
2. 칸트 이전 주요 평화사상 문헌
3. 칸트 평화 이론에 관한 주요 논저
제2부 『영원한 평화』 역주
역주의 원칙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 표
『영원한 평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제1절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들
제2절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확정 조항들
영원한 평화를 위한 제 1 확정 조항
영원한 평화를 위한 제 2 확정 조항
영원한 평화를 위한 제 3 확정 조항
제1추가 영원한 평화의 보증에 대하여
제2추가 영원한 평화를 위한 비밀 조항
부록
I. 영원한 평화의 관점에서, 도덕과 정치의 불일치에 관하여
II. 공법의 초월적 개념에 따른 정치의 도덕과의 일치에 관하여
덧붙임
[덧붙임 1] 「기미 독립 〈선언서〉」
[덧붙임 2-1] 「국제연맹 규약」 ·Covenant of the League of Nations
[덧붙임 2-2] 「국제연합 헌장」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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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임마누엘 칸트,백종현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