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반년 간격으로 각각 출판한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이 두 책을 묶어 부를 때 사용하는 서명이다. 칸트철학 체계 내의 비중과 그 지대한 문화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유독 칸트의 이 저서만이 여태까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 이 책으로 말미암아 관련 분야 연구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Contents
책을 내면서
[윤리형이상학] 역주 일러두기
역주의 원칙
해제와 주해에서 우리말 제목을 사용한 칸트 원 논저 제목[약호],
이를 수록한 베를린 학술원판 전집[AA] 권수(와 인용 역본)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 표
제1부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I. [법이론] 해제
II.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역주
III. [법이론] 찾아보기
제2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I. [덕이론] 해제
II.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역주
III. [덕이론] 찾아보기
Author
임마누엘 칸트,백종현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