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예술철학자. 세계적인 현대예술 비평가이자, 전위예술의 옹호자, 특히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4년생으로, 웨인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한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부터 1992년까지 컬럼비아대학교 철학교수를 지냈으며, 은퇴 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네이션』지의 예술평론가로 활약했으며, 『철학저널』 『아트포럼』 등의 편집을 맡았고, 미국철학회장과 미국미학회장을 역임했다.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무엇이 이것을 예술로 만드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으며, 같은 해 발표한 논문 〈예술계〉로 ‘예술의 정의’ 논쟁을 촉발했다. 그의 선구적 문제 제기는 예술을 어떤 미학적·형식적 특징이 아니라 예술계 종사자들의 사회적 합의로 규정하는 ‘예술제도론’으로 이어졌다. 단토는 1960년대부터 다양하게 분출하기 시작한 새로운 예술을 옹호하면서 ‘예술의 종말’이라는 논쟁적인 선언을 했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전통적 미학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모방이론으로 대표되는 서양예술의 한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이제 예술은 역사이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의 종말’은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는 제약이 모두 사라졌으며 이제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곧 새로운 예술의 시작, 현대예술의 해방 선언이었다.
뒤샹의 전위예술에서 난해한 개념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원적 현대예술은 과거처럼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작품은 표상과 실재, 재현과 진실의 관계를 묻는 일종의 사고실험이기에, 그들의 공통분모인 작품 안의 생각, ‘구현된 의미’를 파악하려는 철학적 비평을 요구한다. 단토는 현대예술이 예술철학에 의해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헤겔의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이 철학으로 승화된다면, 단토의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은 육화된 철학이 된다. 단토는 아무리 추하고 혐오스러운 작품이라도 섣부른 부정적 평가를 삼가고 항상 호감과 호기심을 품었으며, 각자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는 동시대 예술의 개방성과 자유를 사랑했다. “미술관에는 분명 시시한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시대 예술계에는 독창적이고 지적이고 고상한 작품도 많다. 예술계 밖의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예술의 황금기에 들어설지 모른다.”
이 책은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술의 종말 이후』와 더불어 단토의 현대예술철학 3부작 중 마지막 권이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이 현대예술작품의 존재론이고, 『예술의 종말 이후』가 현대예술철학사라면, 이 책은 현대예술계에서 수상쩍은 것으로 의심받고 배척당한 미의 능욕의 역사를 들려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발명되어 오랫동안 예술과 동일시되었던 미는 어떻게 모더니즘 예술, 특히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예술에 의해 버림받았는가? 미에 등을 돌리고 ‘쿨’해지기로 한 결심, 더 이상 ‘망막의 전율’을 위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예술가들의 결단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아름답지 않은 것, 노골적으로 추하고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것들도 예술일 수 있다면 이제 예술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책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모두 무너져내린 ‘예술의 종말’의 시기에 새로운 예술이론, 예술철학을 다시 세우려 시도한 단토의 개인적 고백이자 철학적 모험담이다. 미의 추구와 숭배에서 미의 포기와 경멸로의 이 극적인 여정을 더듬으며, 단토는 미를 파괴하려는 현대예술의 충동을 건강한 움직임으로 긍정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는 행복의 약속’이며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믿음도 견지한다. 2013년 10월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단토는 수많은 평론과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1990년 미국도서평론가협회 평론 부문을 수상한 『만남과 성찰』을 비롯해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술의 종말 이후』 『브릴로 상자를 넘어서』 『경계와의 유희』 『미래의 마돈나』 『앤디 워홀』 『무엇이 예술인가』 등이 있다.
미국의 예술철학자. 세계적인 현대예술 비평가이자, 전위예술의 옹호자, 특히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4년생으로, 웨인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한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부터 1992년까지 컬럼비아대학교 철학교수를 지냈으며, 은퇴 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네이션』지의 예술평론가로 활약했으며, 『철학저널』 『아트포럼』 등의 편집을 맡았고, 미국철학회장과 미국미학회장을 역임했다.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무엇이 이것을 예술로 만드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으며, 같은 해 발표한 논문 〈예술계〉로 ‘예술의 정의’ 논쟁을 촉발했다. 그의 선구적 문제 제기는 예술을 어떤 미학적·형식적 특징이 아니라 예술계 종사자들의 사회적 합의로 규정하는 ‘예술제도론’으로 이어졌다. 단토는 1960년대부터 다양하게 분출하기 시작한 새로운 예술을 옹호하면서 ‘예술의 종말’이라는 논쟁적인 선언을 했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전통적 미학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모방이론으로 대표되는 서양예술의 한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이제 예술은 역사이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의 종말’은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는 제약이 모두 사라졌으며 이제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곧 새로운 예술의 시작, 현대예술의 해방 선언이었다.
뒤샹의 전위예술에서 난해한 개념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원적 현대예술은 과거처럼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작품은 표상과 실재, 재현과 진실의 관계를 묻는 일종의 사고실험이기에, 그들의 공통분모인 작품 안의 생각, ‘구현된 의미’를 파악하려는 철학적 비평을 요구한다. 단토는 현대예술이 예술철학에 의해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헤겔의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이 철학으로 승화된다면, 단토의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은 육화된 철학이 된다. 단토는 아무리 추하고 혐오스러운 작품이라도 섣부른 부정적 평가를 삼가고 항상 호감과 호기심을 품었으며, 각자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는 동시대 예술의 개방성과 자유를 사랑했다. “미술관에는 분명 시시한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시대 예술계에는 독창적이고 지적이고 고상한 작품도 많다. 예술계 밖의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예술의 황금기에 들어설지 모른다.”
이 책은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술의 종말 이후』와 더불어 단토의 현대예술철학 3부작 중 마지막 권이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이 현대예술작품의 존재론이고, 『예술의 종말 이후』가 현대예술철학사라면, 이 책은 현대예술계에서 수상쩍은 것으로 의심받고 배척당한 미의 능욕의 역사를 들려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발명되어 오랫동안 예술과 동일시되었던 미는 어떻게 모더니즘 예술, 특히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예술에 의해 버림받았는가? 미에 등을 돌리고 ‘쿨’해지기로 한 결심, 더 이상 ‘망막의 전율’을 위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예술가들의 결단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아름답지 않은 것, 노골적으로 추하고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것들도 예술일 수 있다면 이제 예술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책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모두 무너져내린 ‘예술의 종말’의 시기에 새로운 예술이론, 예술철학을 다시 세우려 시도한 단토의 개인적 고백이자 철학적 모험담이다. 미의 추구와 숭배에서 미의 포기와 경멸로의 이 극적인 여정을 더듬으며, 단토는 미를 파괴하려는 현대예술의 충동을 건강한 움직임으로 긍정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는 행복의 약속’이며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믿음도 견지한다. 2013년 10월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단토는 수많은 평론과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1990년 미국도서평론가협회 평론 부문을 수상한 『만남과 성찰』을 비롯해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술의 종말 이후』 『브릴로 상자를 넘어서』 『경계와의 유희』 『미래의 마돈나』 『앤디 워홀』 『무엇이 예술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