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1311-1375)의 호는 백온伯溫으로 청전(靑田 절강성) 사람으로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주원장의 장자방으로서 명나라 건국(1368년)의 일등공신으로 장량, 제갈량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3대 책사로 꼽힌다. 유기는 원나라 순제順帝1333년 23세때 수도인 대도大都에서 치르는 회시에 합격하여 진사로 벼슬길에 올랐으나, 지방 토호들의 모함을 받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청전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때 천하통일을 꿈꾸던 주원장이 3고 초려 끝에 스승의 예로 예현관禮賢館을 지어 송렴宋濂등과 함께 모셨다. 1860년 주원장의 나이 33세, 유기의 나이 50세 때의 일이다. 이 때 유기는 천하의 형세와 안위를 언급한 ‘시무십팔책(時務十八策)’을 지어 바쳤다. 그리고 적천수적滴天髓는 유백온이 저자에게 가탁假托받아 원주에 해설을 달아 경도京圖란 이름으로 발간하였다는 설이 있다.
유기(1311-1375)의 호는 백온伯溫으로 청전(靑田 절강성) 사람으로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주원장의 장자방으로서 명나라 건국(1368년)의 일등공신으로 장량, 제갈량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3대 책사로 꼽힌다. 유기는 원나라 순제順帝1333년 23세때 수도인 대도大都에서 치르는 회시에 합격하여 진사로 벼슬길에 올랐으나, 지방 토호들의 모함을 받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청전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때 천하통일을 꿈꾸던 주원장이 3고 초려 끝에 스승의 예로 예현관禮賢館을 지어 송렴宋濂등과 함께 모셨다. 1860년 주원장의 나이 33세, 유기의 나이 50세 때의 일이다. 이 때 유기는 천하의 형세와 안위를 언급한 ‘시무십팔책(時務十八策)’을 지어 바쳤다. 그리고 적천수적滴天髓는 유백온이 저자에게 가탁假托받아 원주에 해설을 달아 경도京圖란 이름으로 발간하였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