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은 내 손 꼬옥 잡아 주는 친구
"담은 숨바꼭질 놀이터. 쓱쓱쓱 한바탕 장난 글씨. 레미파 레미파 노래하는 손가락."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는 골목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공깃돌을 던졌습니다. 금이 가고, 칠이 벗겨진 담벼락에 다섯 손가락을 대고 걸으면, 담은 레미파 레미파 소리를 냅니다. 집에 가방을 던져 두고 나온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면 숨바꼭질, 고무줄, 말뚝 박기 같은 놀이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담, 조금만 힘을 쓰면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는 담. 집과 집을 나누고, 내 것과 네 것을 나누던 담은, 어느새 아이들을 지켜 주고 함께 놀아 주는 친구가 됩니다. 담을 친구 삼아 놀다 보면 해는 꼴딱 지고 산 너머 하늘은 푸르스름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맘때쯤 들려오던 내 이름 부르는 소리, 밥 먹자 외치는 소리! 함께 놀던 담은 기꺼이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소그닥소그닥 집 안에서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담은 외롭지 않았을 거예요. 그 이야기를 고이 품어 안고 별들도 품어 안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