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아르헨티나 문단을 지배하던 사조는 향토주의와 사실주의였고, 평론가들은 보르헤스 환상문학의 선구자적 작품세계에 주목해주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보르헤스와 비오이 카사레스는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보수적인 문단을 조롱하기로 결심한다. 각자의 증조부 이름에서 따온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으로 내놓은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은 독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책이 서점에 깔린 지 한참 지난 뒤에도 독자들은 물론이고 평론가들조차 저자가 가공의 인물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영미권 추리소설이 퍼즐풀이 식의 복잡한 수수께끼 게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고, 유럽대륙의 추리소설이 인간의 어두운 면, 범죄적 심리를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면, 이 작품은 짜릿한 긴장감과 극적 반전을 갖추었으면서도 밝고 익살스러운 라틴아메리카문학의 미덕을 겸비하고 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알고, 창 밖을 보지 않고도 도를 깨친다(不出戶, 知天下. 不窺, 見天道.)"는 문구에 딱 맞는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 이시드로 파로디이다. 그는 원래 이발사였지만 그에게 방세를 밀린 경찰서 서기의 음모로, 정육점 주인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힌다. 어떻게 그의 추리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신문기자에서부터 뜨내기 불량배, 얼치기 시인, 방탕한 부잣집 도련님, 삼류 배우, 심지어 중국 대사관 직원까지 그를 찾아와 미궁에 빠진 사건을 설명하고 조언을 청한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예민한 관찰력뿐! 그러나 그의 칼날 같은 뇌세포는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다.
Contents
서문
황도십이궁
골리아드킨의 밤
황소의 신
산자코모의 숨은 뜻
타데오 리마르도의 희생자
타이안의 기나긴 탐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