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양의 그림책이다. 흰 화면에는 작은 체구의 여자뿐, 모로 기울인 얼굴에 이렇다 할 표정은 없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세계의 두둑을 단단하게 다져 온 작가 전미화의 신작 『그러던 어느 날』은 글 없이 진행되는 그림책이다. 재료를 밀어내는 크라프트종이 위에 두텁고 고집스럽게 올라앉은 그림은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가감 없이 발신한다. 요령이라고는 없는 일상, 일자로 다문 입술과 굵은 두 손. 그의 이야기는 어쩐지 나의 것과 닮았을 것만 같은데, 그 끝은 과연 바라 마지않는 나의 소원에 닿아 있을까.
2009년 『눈썹 올라간 철이』를 시작으로 2019년 오늘까지 작가 전미화는 아홉 권의 창작그림책을 발표하였다. 짧지 않은 시간, 적지 않은 숫자의 그림책을 그는 여러 생명들을 곁에 두고 쓰고 그렸다. 그 모든 갈등과 평화의 시간을 응축한 듯 두터운 힘을 품은 그림이 『그러던 어느 날』의 장면들을 채우고 있다. 단호한 아웃라인과 절정에 이른 자연의 기운을 표현해 내는 색채가 눈부시다. 그의 걸음을 지켜보았던 독자와, 처음 그림책을 접하는 독자 모두에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