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시인, 각본가, 영화제작자, TV 토크쇼 진행자, 칼럼니스트……. 현대 멕시코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 사비나 베르만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을 발산해온 그녀가 2010년, 소설가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추가했다. 참치 사업을 이끌며 ‘나 자신’과 ‘세상’을 깨달아가는 한 특별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나, 참치여자』를 통해서다.
『나, 참치여자』는 여주인공 카렌의, 카렌에 의한, 카렌을 위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이모의 등장부터, 성공과 시련을 모두 겪은 후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는 마지막 장면까지, 화자 카렌은 소설의 모든 곳에서 ‘나’를 확인하고 ‘내’가 되어간다. 소설에는 유난히 ‘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원서를 보면 대문자를 쓴 ‘Yo(나)’로 나와 있다. 스페인어 문장 구조상 주어 ‘yo’를 생략하는 것이 일반적인 부분까지 이례적으로 ‘Yo’가 쓰이고 있기도 하다. 카렌의 언어 습관을 드러내는 이런 독특한 표현과, 그녀가 항상 강조하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는 명제는 『나, 참치여자』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저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하기만 했던 그녀가 본연의 ‘나’를 찾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마치 잘 만든 영화 혹은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한 만족감을 준다. 다년간 극작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쌓아온 베르만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동물(인간)과 말 못하는 동물(자연)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 그것이 전하는 진중한 메시지 또한 그녀 특유의 개성으로 표현되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결코 어렵지도, 대놓고 교훈적이지도 않아 거부감 없이 즐겁게 읽히지만 책장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