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지금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한번쯤 방문해봐야 할 콘라드의 상담실.
그곳에 외면하고픈 우리의 자화상이 있다.

헝가리 현대문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 콘라드 죄르지의 대표작. 작가가 7년 간 아동복지 감독관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그의 첫 작품이자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그는 차분하고 관조적이지만 엄청난 내적 폭발력을 지닌 문장 속에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최하층민들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내 보여준다.

복지과에 근무하는 T는 '자살 미수자'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이상 성욕자' '정신 이상자' 등, 자신에게 상담하러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수기 형식으로 들려준다. 그들은 T 앞에 탄원과 거짓말과 하소연을 늘어놓음으로써 T와 당국이 자신을 구제해주기를 기대하지만, T는 그저 무기력하게 주어진 일을 처리할 뿐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 앞에 고뇌하던 T는 부모가 자살해 홀로 남겨진 정신지체아 페리케를 돌보기로 결심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타인의 고통을 눈 앞에서 목도하고도 무관심하거나 체념하고, 혹은 함께 아파하지만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현실. 작품에서 나타나는 T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담아낸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상담실에 마주하고 앉은 T와 방문객들, 다른 입장에 처해있는 듯 하지만 닮아있는 그들을 통해 현대 사회가 공통적으로 안고 가는 무기력함, 차갑게 굳어버린 그 속의 관계들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