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는 코르네유, 라신과 함께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고전주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코르네유, 라신이 비극 작가인 데 반해 그는 희극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을 즐거운 웃음으로 이끈다. 그 웃음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온갖 위선, 권위, 억압을 향한 비웃음이기도 하다. 몰리에르가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옹호하는 것이 바로 그런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자발성과 자유이다. 그리고 그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인습, 권위, 억압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그릇된 것인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인간 사회에는 언제나 억압적인 권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은 언제나 그 억압적 권위를 비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17세기 프랑스 작가인 몰리에르의 작품이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읽지 않는 고전은 없는 고전이고, 즐기지 못하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고전은 죽은 고전이다. ‘큰글자 세계문학컬렉션’은 마음을 풍요롭게 다스리고 날카롭게 자신을 마주하고 싶은 시니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최초의 고전문학선이다. 두껍고 지루한 고전을 친절하고 더 맛깔스럽게 재탄생시킨 ‘축역본’이자 글자 크기를 키워, 보다 편한 독서를 도와준다.
Contents
아내들의 학교
수전노
『아내들의 학교·수전노』를 찾아서
『아내들의 학교·수전노』 바칼로레아
Author
몰리에르,진형준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파리에서 출생했으며 1622년 1월 15일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644년 6월 28일자로 예명 몰리에르를 사용하며 연극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그는 30년 동안 오직 연극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다가 51세 때 공연 도중에 죽음을 맞이했다. 서양 중세를 거치며 비극에 비해 열등한 장르로 간주되던 희극의 미학적 가치를 제고해 근대적 의미에서 희극의 위상을 정립했다. 영국인들이 영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몰리에르의 희극에는 프랑스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마술 같은 언어로 녹아들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연극에 빠져들었던 몰리에르는 13년의 유랑 극단 생활을 거치며 유럽 근대의 여명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경험했다. 유랑을 마치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파리 연극계로 재입성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많은 시기와 모함에 맞서야 했다. 그는 52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40대 초반에 발병한 폐질환에 시달렸지만 한순간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이 위대한 희극 작가의 작품들은 30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삶의 울림이 있는 웃음을 선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웃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이 주는 감동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의 초기 연극 활동은 지방에서 이뤄졌으며,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최초의 작품으로는, 리옹에서 공연된 「경솔한 사람」(1655)과 베지에에서 공연된 「애정 다툼」(1656) 등을 꼽을 수 있다. 극작가 몰리에르의 명성은 그의 극단이 1658년 10월 24일 옛 루브르 궁전의 근위대 처소에 마련된 가설무대에서 루이 14세와 궁정을 위해 공연한 코르네유의 「니코메드」와 그 자신의 작품 「사랑에 빠진 의사」를 통해서 확고해졌다. 마침내 1662년 12월 26일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아내들의 학교」와, 1664년 5월 첫 번째 「타르튀프」 공연은 그를 격랑과 추문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는 「동 쥐앙」(1665)을 무대에 올려 사태를 가일층 격화시켰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파리에서 출생했으며 1622년 1월 15일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644년 6월 28일자로 예명 몰리에르를 사용하며 연극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그는 30년 동안 오직 연극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다가 51세 때 공연 도중에 죽음을 맞이했다. 서양 중세를 거치며 비극에 비해 열등한 장르로 간주되던 희극의 미학적 가치를 제고해 근대적 의미에서 희극의 위상을 정립했다. 영국인들이 영어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몰리에르의 희극에는 프랑스 고유의 정서와 문화가 마술 같은 언어로 녹아들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나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연극에 빠져들었던 몰리에르는 13년의 유랑 극단 생활을 거치며 유럽 근대의 여명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경험했다. 유랑을 마치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파리 연극계로 재입성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많은 시기와 모함에 맞서야 했다. 그는 52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40대 초반에 발병한 폐질환에 시달렸지만 한순간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이 위대한 희극 작가의 작품들은 30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삶의 울림이 있는 웃음을 선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웃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이 주는 감동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의 초기 연극 활동은 지방에서 이뤄졌으며,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최초의 작품으로는, 리옹에서 공연된 「경솔한 사람」(1655)과 베지에에서 공연된 「애정 다툼」(1656) 등을 꼽을 수 있다. 극작가 몰리에르의 명성은 그의 극단이 1658년 10월 24일 옛 루브르 궁전의 근위대 처소에 마련된 가설무대에서 루이 14세와 궁정을 위해 공연한 코르네유의 「니코메드」와 그 자신의 작품 「사랑에 빠진 의사」를 통해서 확고해졌다. 마침내 1662년 12월 26일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아내들의 학교」와, 1664년 5월 첫 번째 「타르튀프」 공연은 그를 격랑과 추문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는 「동 쥐앙」(1665)을 무대에 올려 사태를 가일층 격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