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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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10/01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49706726
Categories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Description
정의를 추구하고 사랑을 꿈꾸는
'행복한 소수'를 위한 낭만의 대서사시


발자크, 플로베르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스탕달의 만년의 걸작.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처럼 야심 많고 대담하고 도덕감이 결여된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정열과 욕망을 펼치는 이야기로, 자유를 꿈꾸는 청년이 단조롭고 용렬하며 타산적인 19세기 사회(파르마 공국)에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불멸의 청춘상을 그려내고 있다.

『파르마 수도원』은 앙드레 지드가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는 작품이며, 동시대를 살았던 발자크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함이 돋보인다"고 극찬했다. 나폴레옹의 전투, 이탈리아의 법정 음모, 그리고 아름다운 로맨스가 함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고전이다.
Contents
머리글

제1권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2권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제21장
제22장
제23장
제24장
제25장
제26장
제27장
제28장

스탕달의 생애와 파르마 수도원
스탕달 연보
Author
스탕달,이혜윤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 외에 문예평론·여행기·평전을 남겼다. 문필활동 말고는 나폴레옹시기에 군인·군무원을, 7월혁명 이후에 외교관을 지낸다.

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고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를 넘지만,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필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회화사』, 『아르망스』 등을 집필했다. 1819년 메칠드와 생애 최고의 연애를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험은 뒷날에 평론 『연애론』(1822)을 탄생시킨다. 1921년 파리로 돌아와 문필활동을 계속하며 1825년 『라신과 셰익스피어』를 발표하여 낭만주의운동의 대변자가 된다.

첫 소설 『아르망스』(1827)는 성적 불능자를 주인공으로 한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7월혁명 이후 대표작 『적과 흑』(1830)을 출간하며 처음으로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 밖에 미완성 장편소설 『뤼시앙 뢰방』, 『라미엘』, 사후에 ‘이탈리아 연대기’로 간행되는 『카스트로의 수녀원장』 등 중·단편들을 모은 『한 만유자의 메모』(1838)를 발표한다. ‘이탈리아 연대기’의 연장인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그의 생애를 매듭짓는 걸작이 된다.

이처럼 발상과 기법의 참신함 때문에 작가 생전에는 많은 이해를 얻지 못하지만, 죽은 뒤 스탕달의 작품은 점점 많은 독자를 얻어 세계적인 명작으로 발돋움한다. 스탕달은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 외에 문예평론·여행기·평전을 남겼다. 문필활동 말고는 나폴레옹시기에 군인·군무원을, 7월혁명 이후에 외교관을 지낸다.

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고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를 넘지만,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필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회화사』, 『아르망스』 등을 집필했다. 1819년 메칠드와 생애 최고의 연애를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험은 뒷날에 평론 『연애론』(1822)을 탄생시킨다. 1921년 파리로 돌아와 문필활동을 계속하며 1825년 『라신과 셰익스피어』를 발표하여 낭만주의운동의 대변자가 된다.

첫 소설 『아르망스』(1827)는 성적 불능자를 주인공으로 한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7월혁명 이후 대표작 『적과 흑』(1830)을 출간하며 처음으로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 밖에 미완성 장편소설 『뤼시앙 뢰방』, 『라미엘』, 사후에 ‘이탈리아 연대기’로 간행되는 『카스트로의 수녀원장』 등 중·단편들을 모은 『한 만유자의 메모』(1838)를 발표한다. ‘이탈리아 연대기’의 연장인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그의 생애를 매듭짓는 걸작이 된다.

이처럼 발상과 기법의 참신함 때문에 작가 생전에는 많은 이해를 얻지 못하지만, 죽은 뒤 스탕달의 작품은 점점 많은 독자를 얻어 세계적인 명작으로 발돋움한다. 스탕달은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