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하이쿠 작가, 서민문화가 꽃을 피웠던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대표 시인. 아명 긴사쿠(金作), 본명 무네후사(宗房). 호는 처음에 도세이(桃靑)였다가, 후에 바쇼로 했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 전기에 이가의 우에노에서 태어나 하이쿠를 대성한 유명한 인물이다.
1644년 지금의 미에현 이가우에노에서 농민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바쇼는 하이쿠를 접하면서 시문에 관심을 지닌 무사나 문인들과 교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1662년 무렵 기타무라키긴의 데이몬 하이카이(俳諧: 하이쿠, 렌쿠의 총칭)를 배우고 본명인 무네후사(宗房)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1666년 요시타다가 죽자, 교토에 가서 고전을 배우고 1672년에 에도로 가서 담림 하이카이를 배웠다. 스물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당시 새로운 도읍지였던 에도에 정착하였고, 인생의 전기를 맞아 하이쿠를 읊고 가르치면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1680년 에도의 후카가와의 바쇼암(芭蕉庵)에 살면서 호를 바쇼로 바꾸고 독특한 풍의 하이카이를 만들었다. 1684년에는 에도에서 고향인 이가를 오고가며 기행문과 하이카이집을 편찬하였다. 서른일곱 살 젊은 나이에 돌연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암자에 은거하며 고전을 탐독한다. 마흔한 살에 그때까지 고전에서 얻은 감동을 하이쿠에도 담아내고자 방랑의 길에 나선다. 여행길에서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소박한 서민들의 삶과 자연을 노래했으며, 최소한의 상징적인 언어와 여백으로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였다. 1687년 가시마, 스마, 아카시, 1688년에는 사라시나, 1689년에는 호쿠리쿠를 여행하며 바쇼풍의 하이쿠를 완성하게 된다. 1694년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라는 마지막 시를 남기고 오사카에서 객사했다.
그는 한적하고 고담한 경지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어 읊는 하이쿠를 즐겨 지었다. 또한 변화하는 것 속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읊는 '불역유행(不易流行)'을 근본이념으로 삼았다. 바쇼의 문학은 여정을 중시한 중세적인 상징미를 근세적인 서민성 속에 살린 것으로 평가 받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바쇼의 방랑 여정을 따라 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에즈라 파운드, 옥타비오 파스 및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하이쿠의 예술성을 높인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하이쿠 작가, 서민문화가 꽃을 피웠던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대표 시인. 아명 긴사쿠(金作), 본명 무네후사(宗房). 호는 처음에 도세이(桃靑)였다가, 후에 바쇼로 했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 전기에 이가의 우에노에서 태어나 하이쿠를 대성한 유명한 인물이다.
1644년 지금의 미에현 이가우에노에서 농민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바쇼는 하이쿠를 접하면서 시문에 관심을 지닌 무사나 문인들과 교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1662년 무렵 기타무라키긴의 데이몬 하이카이(俳諧: 하이쿠, 렌쿠의 총칭)를 배우고 본명인 무네후사(宗房)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1666년 요시타다가 죽자, 교토에 가서 고전을 배우고 1672년에 에도로 가서 담림 하이카이를 배웠다. 스물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당시 새로운 도읍지였던 에도에 정착하였고, 인생의 전기를 맞아 하이쿠를 읊고 가르치면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1680년 에도의 후카가와의 바쇼암(芭蕉庵)에 살면서 호를 바쇼로 바꾸고 독특한 풍의 하이카이를 만들었다. 1684년에는 에도에서 고향인 이가를 오고가며 기행문과 하이카이집을 편찬하였다. 서른일곱 살 젊은 나이에 돌연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암자에 은거하며 고전을 탐독한다. 마흔한 살에 그때까지 고전에서 얻은 감동을 하이쿠에도 담아내고자 방랑의 길에 나선다. 여행길에서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소박한 서민들의 삶과 자연을 노래했으며, 최소한의 상징적인 언어와 여백으로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였다. 1687년 가시마, 스마, 아카시, 1688년에는 사라시나, 1689년에는 호쿠리쿠를 여행하며 바쇼풍의 하이쿠를 완성하게 된다. 1694년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라는 마지막 시를 남기고 오사카에서 객사했다.
그는 한적하고 고담한 경지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어 읊는 하이쿠를 즐겨 지었다. 또한 변화하는 것 속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읊는 '불역유행(不易流行)'을 근본이념으로 삼았다. 바쇼의 문학은 여정을 중시한 중세적인 상징미를 근세적인 서민성 속에 살린 것으로 평가 받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바쇼의 방랑 여정을 따라 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에즈라 파운드, 옥타비오 파스 및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하이쿠의 예술성을 높인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