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건물들, 아수라장이 된 거리의 상점들은 굳게 잠겼고, 먹을거리도 별로 없는 이곳은 전쟁이 끝난 어느 마을입니다. 소녀 안나는 겨울이 되어 예전에 입던 푸른 코트를 꺼냈지만, 더 이상 맞지도 따뜻하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엄마에게는 돈도 없었고, 돈이 있다 해도 코트를 파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궁리 끝에 엄마는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엄마는 딸을 위해 금시계를 비롯해 갖고 있던 값나가는 물건들을 돈 대신에 주기로 합니다. 양털을 준 농부 아저씨에게는 금시계를, 양털로 실을 자아준 할머니에게는 램프를 주지요. 실을 물들이는 건 안나와 엄마의 몫. 안나와 엄나는 여름 산에서 빨간 산딸기를 바구니 가득 따서 안나가 입고 싶은 빨간색으로 양털실을 물들이고, 물들인 실은 옷감 짜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옷감으로 만듭니다. 옷감을 짜 준 아주머니에게는 예쁜 석류석 목걸이를, 마지막으로 옷을 완성시켜 준 재봉사 아저씨에게는 도자기 찻주전자를 건넵니다. 마침내 새 외투가 다 만들어지자, 안나와 엄마는 외투를 만들어 준 농부, 실 잣는 할머니, 옷감 짜는 아주머니, 재봉사를 초대해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지요. 이렇게 해서 안나의 새 코트는 1여 년 동안 만들어 졌습니다. 모든 게 풍부하고,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요즘같은 시대에서는 쉽게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랍니다. 부모님들이 바로 사주지 않으면 떼를 쓰고, 울고마는 요즘의 아이들과 의젓한 안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지요.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어느 도시에 살았던 잉게보르크라는 어린 딸과 어머니 한나 슈라프트 사이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고 그린 것입니다. 딸을 위해 값진 물건을 내놓는 어머니의 사랑,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1년 여의 시간을 참으며, 엄마를 돕는 안나의 인내심이 이야기 속에 녹아 더욱 따뜻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