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현남 오빠에게』에서는 연인인 현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한 여자가 나온다. 가스라이터가 잘하는 행동 중 하나는 ‘무의미한 싸움 걸기’인데, 현남은 여자에게 기억에 관해 사소한 싸움을 반복적으로 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자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신뢰를 놓아버리게 만든다. 여자는 두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것이 두려워 늘 현남의 말을 인정하고 넘어간다.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현남이 예민하게 군다며 면박 주는 바람에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개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두 상자에 따로 가둔다.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레버가 있는 첫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다 전기 충격을 멈추는 법을 배운다. 반면 레버가 없는 두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개들은 작은 담만 넘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겨지는데, 이때 첫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새로운 상자로 옮겨가자마자 곧장 담을 넘었고, 두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받아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을 배워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길의 종착지에는 손해 보고 이용당하는 삶이 있지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국에는 내가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되지요.”
심리학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서 따뜻한 유용함을 발휘할 수 있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자 신고은은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또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도록 영화, 소설, 드라마 등 익숙한 콘텐츠를 사례로 차용하여 가스라이팅을 설명하고 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스라이팅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과 연관된 목소리”를 담아냈고 여기에는 “우리 삶에서 스쳐간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할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Contents
들어가는 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1. 오늘도 가스라이팅
피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일상
우리는 사랑일까
세상의 모든 가해자
무의미하게 의미 있는 사람들
추악한 다정함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2. 가스라이팅 레시피
핑퐁 게임의 두 선수
만들어진 진실
조종당한 마음
내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 때
내가 홀로 남겨진 까닭은
가스라이티가 가스라이터가 되기까지
3. 치밀하고 친밀한 적 가스라이터
가스라이터의 세 얼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거절할 수 없는 진심
완전해야 한다는 착각
똑똑, 잠시만 들어가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이 지옥이다
4. 준비된 가스라이티
우리 안의 만들어진 천사
익숙해진 포기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했던 이유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덕이야, 아니 내 탓이야
애타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게
5. 굿바이 가스라이팅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시죠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윙윙윙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다정한 고슴도치의 사회적 거리 두기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사이코지만 네가 있다면 괜찮아
나가는 글: 가치 있는 ‘같이’의 삶
참고문헌
Author
신고은
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했다. 여러 대학 강의와 대중 강연을 하며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심리학 교양을 전하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단단한 마음을 얻었고 다른 사람과도 이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꾸며 다양한 채널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를 썼다.
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했다. 여러 대학 강의와 대중 강연을 하며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심리학 교양을 전하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단단한 마음을 얻었고 다른 사람과도 이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꾸며 다양한 채널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