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두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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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4/05/15
Pages/Weight/Size 132*224*30mm
ISBN 9788937461019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세계각국소설
Description
『페르디두르케』는 1937년 폴란드에서 발표된 후 보수적인 평단의 비난과 젊은 지식인들의 열광이라는 대조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출세작이자, 이후 곰브로비치의 작품 세계를 특징짓는 원형과 같은 작품이다.

성숙과 정상성의 가면 뒤에 감춰진 지배의 욕망과 그에 맞서는 미성숙과 비정상성의 도전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다양한 서사 형식을 동원하여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후 나치에 의해 금지되었고 그 후 폴란드의 정치 상황에 따라 잠깐 복간되었다가 다시 판금되었다. 고국 폴란드에서와는 달리 1950년대 프랑스에 소개되면서 잊혀져 있던 곰브로비치의 명성을 순식간에 재확립한 문제작으로 평가받았다.

서른 살의 작가가 화자이자 주인공인(발표 당시 곰브로비치는 서른세 살이었다.) 1인칭의 예술가 소설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납치되고 성장기를 다시 겪는다는 설정은 환상 소설이자 성장 소설의 외연을 부여한다. 여기에 『페르디두르케』의 저자 자신이 끊임없이 개입하여 역사와 문학, 정치와 예술 전반에 대한 논평을 삽입한다. 중반부에는 저자의 논평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책 속의 책이 단독적으로 삽입된다. 각 장 안에서도 희곡의 틀을 빌려 대화를 구성하거나 각종 편지와 작품을 인용하는 등 과감한 형식 실험이 이어진다.

( ‘페르디두르케’라는 제목은 곰브로비치가 즐겨 읽던 미국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의 작품 ?배빗?의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작품 ?페르디두르케?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Contents
제1장 - 납치
제2장 - 감금, 그리고 작아지기 계속
제3장 - 움켜쥐기, 그리고 반죽하기 계속
제4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서문
제5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제6장 - 매혹, 그리고 젊음을 향해 끌려가기 계속
제7장 - 사랑
제8장 - 스큐요리
제9장 - 정탐, 그리고 현대성 속으로 빠져 들기 계속
제10장 - 날뛰는 다리들, 그리고 또다시 움켜쥐기
제11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서문
제12장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제13장 - 머슴, 혹은 다시 붙잡히기
제14장 - 날뛰는 낯짝들, 그리고 또다시 움켜쥐기

작품해설 / 수전 손택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Author
비톨트 곰브로비치,윤진
본명은 마리안 비톨트 곰브로비치(Marian Witold Gombrowicz). 1904년 폴란드 동남부 산도미에시 근처의 작은 마을 마워쉬쩨에서 귀족 가문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르샤바 김나지움에 이어 바르샤바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파리로 건너가 파리 국제 관계 대학원에 진학한다. 법원에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자 문학에 대한 관심을 살려 1933년 첫 단편집 『성장기의 회고록』을 출간하고(1957년 ‘바카카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이어 1937년 첫 장편 『페르디두르케』를, 1938년 희곡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를, 1939년 장편 『악령 들린 사람들』을 발표한다. 그해 취재차 여객선 흐로브리 호에 탑승한 곰브로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그는 은행원 등으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1953년 장편 『대서양 횡단선』과 희곡 「결혼식」을 발표한 곰브로비치는 1955년 전업 작가로 나선다. 1957년 『일기: 1953~6년』과 단편집 『바카카이』를, 1960년 장편 『포르노그라피아』를, 1962년 『일기: 1957~61년』을 발표한 그는 1961년 유럽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폴란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서베를린에 머물다가, 이듬해 프랑스 남부 방스로 떠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곰브로비치는 1965년 장편 『코스모스』를, 1966년 『일기: 1961~6년』과 희곡 「오페레타」를, 1968년 회고록 『증언』을 발표하고 그해 리타 라브로스와 결혼한다. 1969년 숨을 거둔다.
본명은 마리안 비톨트 곰브로비치(Marian Witold Gombrowicz). 1904년 폴란드 동남부 산도미에시 근처의 작은 마을 마워쉬쩨에서 귀족 가문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르샤바 김나지움에 이어 바르샤바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파리로 건너가 파리 국제 관계 대학원에 진학한다. 법원에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자 문학에 대한 관심을 살려 1933년 첫 단편집 『성장기의 회고록』을 출간하고(1957년 ‘바카카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이어 1937년 첫 장편 『페르디두르케』를, 1938년 희곡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를, 1939년 장편 『악령 들린 사람들』을 발표한다. 그해 취재차 여객선 흐로브리 호에 탑승한 곰브로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그는 은행원 등으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1953년 장편 『대서양 횡단선』과 희곡 「결혼식」을 발표한 곰브로비치는 1955년 전업 작가로 나선다. 1957년 『일기: 1953~6년』과 단편집 『바카카이』를, 1960년 장편 『포르노그라피아』를, 1962년 『일기: 1957~61년』을 발표한 그는 1961년 유럽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폴란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서베를린에 머물다가, 이듬해 프랑스 남부 방스로 떠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곰브로비치는 1965년 장편 『코스모스』를, 1966년 『일기: 1961~6년』과 희곡 「오페레타」를, 1968년 회고록 『증언』을 발표하고 그해 리타 라브로스와 결혼한다. 1969년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