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현대 인간들의 상황과 소외의 모습, 그리고 총체적인 인간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표현한 소설이다. 칼비노는 이 작품에 대해 다양한 차원의 인간 존재에 관한, 존재와 의식, 주체와 객체에 관한 이야기이자 우리 자아를 실현하고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존재한다는 의식과 의지만으로 존재하는 아질울포,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 없이 존재하는 구르둘루는 존재와 비존재, 의식과 무의식의 양극단을 상징한다. 이 두 인물 주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려는 인간적인 정열에 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칼비노는 이들이 가진 뜨겁고 불안정한 열정을 결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폭정에 고통받던 쿠르발디아 마을 주민들이 이 젊은이들을 통해 스스로 세상에 맞서 평등하게 존재하는 법을 깨닫는 일화를 통해, 이러한 열정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자 미덕이라 말한다.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독특한 인물들의 모험 끝에서는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인 수녀 테오도라의 비밀이 밝혀진다. 미래를 향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테오도라 수녀는 바로 주관적인 열정과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관심을 포용해 낼 수 있는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향한 칼비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Contents
존재하지 않는 기사 7
작품 해설 173
작가 연보 180
Author
이탈로 칼비노,이현경
1923년 쿠바에서 농학자였던 아버지와 식물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이주한 칼비노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접하며 자라났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칼비노는 부모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레지스탕스에 참가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조셉 콘래드에 관한 논문으로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한 네오리얼리즘 소설 『거미집 속의 오솔길』(1947)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당시 이탈리아 문학계를 대표하던 파베세, 비토리니 등과 교제하였다. 『반쪼가리 자작』(1952), 『나무 위의 남작』(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 3부작과 같은 환상과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과 『우주 만화』(1965)와 같이 과학적인 환상성을 띤 작품을 발표하면서 칼비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9년부터 1966년까지 비토리니와 함께 좌익 월간지인 <메나보 디 레테라투라>를 발행했다. 1964년 파리로 이주한 뒤 후기 대표작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을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펠트리넬리 상을 수상하였다. 1981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1984년 이탈리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의 ‘찰스 엘리엇 노턴 문학 강좌’를 맡아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강연 원고를 준비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1985년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1923년 쿠바에서 농학자였던 아버지와 식물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이주한 칼비노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접하며 자라났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칼비노는 부모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레지스탕스에 참가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조셉 콘래드에 관한 논문으로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한 네오리얼리즘 소설 『거미집 속의 오솔길』(1947)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당시 이탈리아 문학계를 대표하던 파베세, 비토리니 등과 교제하였다. 『반쪼가리 자작』(1952), 『나무 위의 남작』(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 3부작과 같은 환상과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과 『우주 만화』(1965)와 같이 과학적인 환상성을 띤 작품을 발표하면서 칼비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9년부터 1966년까지 비토리니와 함께 좌익 월간지인 <메나보 디 레테라투라>를 발행했다. 1964년 파리로 이주한 뒤 후기 대표작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을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펠트리넬리 상을 수상하였다. 1981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1984년 이탈리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의 ‘찰스 엘리엇 노턴 문학 강좌’를 맡아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강연 원고를 준비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1985년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