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모범

보르헤스 가명 소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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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7/31
Pages/Weight/Size 132*225*40mm
ISBN 9788937436550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세계각국소설
Description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가명의 소설가를 내세워
보르헤스와 카사레스가 직조한 천일야화
비오르헤스의 탄생을 선언하는 미스터리 가명 소설집!

조이스, 카프카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논쟁을 촉발시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환상 소설의 대가이자 스페인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한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가명의 소설가인 ‘오노리노 부스토스 도메크’를 내세워 만들어 낸 공동의 단편 소설 모음집 『죽음의 모범』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보르헤스와 카사레스의 공동 창작은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문학 실험으로, 평단으로부터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공동 작업의 결과이며, 이 가상 작가(오노리노 부스토스 도메크)의 문체는 보르헤스는 물론 카사레스와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풍자와 아이러니가 넘치고 추리 소설 기법으로 정황 묘사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죽음의 모범』은 서사적 속도감이 문체적 특징인 카사레스와 백과사전적 지식을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풀어 놓는 보르헤스의 형이상학적 문체가 한데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신비로 독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Contents
1부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사건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 15
서문 18
황도 십이궁 28
골리아드킨의 밤 52
황소의 신 75
산자코모의 예견 98
타데오 리마르도의 희생자 141
타이안의 기나긴 추적 173

2부
두 가지 놀라운 환상


증인 203
증거 217

3부
죽음의 모범


서문에 부쳐 235
등장인물 241

4부
변두리 사람들/믿는 자들의 낙원


서문 317
변두리 사람들 321
믿는 자들의 낙원 405

5부
부스토스 도메크의 연대기


서문 481
세사르 팔라디온를 기리며 485
라몬 보나베나와 함께한 어느 오후 491
절대의 탐구 499
시대에 걸맞은 자연주의 506
루미스의 다양한 작품 목록과 분석 512
추상 예술 519
조합주의자 525
세계의 연극 530
예술이 싹트다 535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540
선택하는 눈 547
부족한 것은 해를 입히지 않는다 553
다재다능한 빌라세코 558
우리의 붓: 타파스 561
의상 1 564
의상 2 570
빛나는 접근법 573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 577
아이들러 582
죽지 않는 사람들 585
긍정적인 기여 592

6부
부스토스 도메크의 새로운 단편들


죽을 때까지 이어진 우정 599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서 608
몬스트루오의 축제 626
친구의 아들 642
어두움과 화려함 670
영광의 형태 678
검열의 주적(主敵) 687
작품으로 구원받기 695

책임 정하기 708


작품 해설 717
작가 연보 734
Author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이경민,황수현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전위 문예 운동인 ‘최후주의’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각종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1931년 비오이 카사레스, 빅토리아 오캄포 등과 함께 문예지 [수르]를 창간, 아르헨티나 문단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현대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제임스처럼 거의 정규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냈다. 대신 그는 역시 헨리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영국계인 외할머니와 가정교사인 팅크 양으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등 개인 교수를 통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았다. 그는 이미 일곱살에 영어로 『그리스 신화』 요약을 썼고, 여덟 살에는 『돈키호테』를 읽고 영감을 받아 「치명적인 모자의 챙」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영어 단편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작가인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꽃피웠으며, '제 2세대'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를 벗어나 프랑스의 신소설가들을 비롯 존 바스, 존 허크스, 도널드 바셀미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반사실주의 세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경험과 상상의 세계는 문제를 야기하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점에서 사무엘 베게트에 버금간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과 본인의 큰 부상을 겪은 후 보르헤스는 재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의 단편 소설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 독창적인 문학 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이후 많은 소설집과 시집, 평론집을 발표하며 문학의 본질과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천착한다.

보르헤스는 1938년 어두운 계단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이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은 자신의 맑은 정신과 판단력을 잃었다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쓴 작품이다. 1937년부터 근무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도서관에서 1946년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안 페론을 비판하여 해고된 그는 페론 정권 붕괴 이후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50년대 중반 보르헤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시력 약화 증세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다. 보르헤스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글도 읽어주고 창작 활동도 도와주었다. 보르헤스는 예순여섯 살에 어릴 적 친구였던 여성과 처음으로 결혼하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숨지기 몇 주 전에 자신의 제자이자 비서인 여성과 재혼했다. 보르헤스는 앞을 못 보면서도 강의를 하러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또 20세기의 매우 영향력 있는 국제적 명성도 날로 높아만 갔다.

1980년에는 세르반테스 상, 1956년에는 아르헨티나 국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7년 66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어린 시절 친구인 엘사 미얀과 결혼했으나 3년 만에 이혼, 1986년 개인 비서인 마리아 코다마와 결혼한 뒤 그해 6월 14일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보르헤스의 업적은 일관성과 가능성에 의해 어색해진 소설의 편협한 박진감을, 환상이 섞인 보다 광범위한 마음의 작용으로 대체시키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상상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에도 형태를 만들어준다. 이야기꾼의 책략을 흔쾌히 받아들인 보르헤스는 하나의 일관된 이중 초점을 유지해 가면서, 언어와 독서에서 세계를 반영할 때 나타나는 역설과 함께 경험도 반영한다.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전위 문예 운동인 ‘최후주의’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각종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1931년 비오이 카사레스, 빅토리아 오캄포 등과 함께 문예지 [수르]를 창간, 아르헨티나 문단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현대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제임스처럼 거의 정규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냈다. 대신 그는 역시 헨리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영국계인 외할머니와 가정교사인 팅크 양으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등 개인 교수를 통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았다. 그는 이미 일곱살에 영어로 『그리스 신화』 요약을 썼고, 여덟 살에는 『돈키호테』를 읽고 영감을 받아 「치명적인 모자의 챙」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영어 단편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작가인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꽃피웠으며, '제 2세대'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를 벗어나 프랑스의 신소설가들을 비롯 존 바스, 존 허크스, 도널드 바셀미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반사실주의 세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경험과 상상의 세계는 문제를 야기하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점에서 사무엘 베게트에 버금간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과 본인의 큰 부상을 겪은 후 보르헤스는 재활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의 단편 소설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 독창적인 문학 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이후 많은 소설집과 시집, 평론집을 발표하며 문학의 본질과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천착한다.

보르헤스는 1938년 어두운 계단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이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은 자신의 맑은 정신과 판단력을 잃었다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쓴 작품이다. 1937년부터 근무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 도서관에서 1946년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안 페론을 비판하여 해고된 그는 페론 정권 붕괴 이후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50년대 중반 보르헤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시력 약화 증세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다. 보르헤스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글도 읽어주고 창작 활동도 도와주었다. 보르헤스는 예순여섯 살에 어릴 적 친구였던 여성과 처음으로 결혼하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숨지기 몇 주 전에 자신의 제자이자 비서인 여성과 재혼했다. 보르헤스는 앞을 못 보면서도 강의를 하러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또 20세기의 매우 영향력 있는 국제적 명성도 날로 높아만 갔다.

1980년에는 세르반테스 상, 1956년에는 아르헨티나 국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7년 66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어린 시절 친구인 엘사 미얀과 결혼했으나 3년 만에 이혼, 1986년 개인 비서인 마리아 코다마와 결혼한 뒤 그해 6월 14일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보르헤스의 업적은 일관성과 가능성에 의해 어색해진 소설의 편협한 박진감을, 환상이 섞인 보다 광범위한 마음의 작용으로 대체시키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상상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에도 형태를 만들어준다. 이야기꾼의 책략을 흔쾌히 받아들인 보르헤스는 하나의 일관된 이중 초점을 유지해 가면서, 언어와 독서에서 세계를 반영할 때 나타나는 역설과 함께 경험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