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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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9/16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36472337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1985년 출간된 다산학(茶山學)의 스테디셀러 『다산산문선(茶山散文選)』이 다산 탄신 250주년(2012년) 사업의 일환으로 3년간의 작업 끝에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산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박석무 성균관대 석좌초빙교수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신유사옥 당시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일대기 등을 다산 스스로 ‘묘지명(墓誌銘)’ 문체를 빌려 기술한 글들을 모아 번역한 것이다. 누구의 부탁도 받지 않고 쓴 이 글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지식인들이 수난받던 시대의 생생한 자료로서 고발문학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다산의 부친에 대한 기억과 어린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인 「아버지를 생각하며」와 「맏형수 공인 이씨 묘지명」을 추가해 다산의 생애에서 빠진 부분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이제 개정증보된 내용으로 새롭게 출간되는 『다산산문선』을 통해 다산의 일생과 사상, 학문, 인격은 물론 다산학 형성기의 주요인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당시 권력층의 패악상을 폭로하는 고발문학의 성격을 감안할 때 신유사화의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자료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Author
정약용,박석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