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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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3647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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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9/16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36472320
Categories 인문 > 한국철학
Description
1981년 출간된 다산학(茶山學)의 스테디셀러 『다산시선(茶山詩選)』이 다산 탄신 250주년(2012년) 사업의 일환으로 3년간의 작업 끝에 창비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퇴계학연구소 원장이자 다산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인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엮고 번역한 이 책은 실학의 거대 산맥인 다산을 이해하는 필독서로 평가받아왔다. 일표이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로 알려진 주요저서 외에도 다산이 남긴 시의 규모는 방대하다. 2500여수에 달하는 다산의 시에는 그의 사상과 생애의 갖가지 곡절이 마치 일기처럼 펼쳐져 있다. 그중 기존에 가려뽑은 129수 외에 50여편을 새로 번역하고 추가해 이 책만으로도 다산의 일생을 조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국자직강에 제수되어」「탄핵을 당하고」「회혼일에」 등 새로 추가된 시편은 특정 시기 다산의 심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익히 알고 있는 사회시와 애민시뿐만이 아니라, 우화시, 자연풍광을 노래한 시, 가족에 대한 시 등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어 다산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문과 해제를 대폭 수정 보완하고, 연보도 좀더 상세하게 보완했다.
Author
정약용,송재소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