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팡 떼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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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6/07/25
Pages/Weight/Size 153*224*20mm
ISBN 9788936464486
Categories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Description
‘앙팡 떼리블’이라는 명명을 낳은 20세기의 문제작
프랑스 아방가르드 예술의 기수 장 꼭또의 대표작

20세기 프랑스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끈 장 꼭또의 『앙팡 떼리블』이 창비세계문학 48번으로 발간되었다. 장 꼭또는 50여년에 걸쳐 시와 소설뿐 아니라 평론, 연극, 영화, 미술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고도 방대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소설 『앙팡 떼리블』은 상식적인 도덕관념과 기성세대의 질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10대의 두 남매를 둘러싼 짧고 강렬한 이야기이자 소설로 쓴 시이며, 장 꼭또의 예술관을 집약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동성애, 근친상간, 마약, 권총자살 등 사회적 규범에 반하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그것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관점을 미학화하며 절대적 순수의 세계를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 이후, ‘앙팡 떼리블’은 젊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이, 즉 ‘무서운 신예’를 뜻하는 관용구로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장 꼭또의 작품들은 이상, 김기림, 박인환 등 1930~40년대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에게도 사랑받으며 국내에 일찌감치 소개되기 시작했고, 고다르, 알모도바르 등의 유럽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장 꼭또의 작품들은 지금도 전세계 많은 예술가들의 손에 음악, 영상, 오페라 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번 불문학자 심재중의 번역은 기존 한국어판들의 오류들을 바로잡고, 장 꼭또의 심미적 문체를 살려보려는 시도다.
Contents
1부
2부

작품해설 / 『앙팡 떼리블』, 고아들의 특권적인 세계
작가연보
발간사
Author
장 꼭또,심재중
대표작 『시인의 피』 『오르페의 유언』 『오르페』

바그너식의 종합적인 예술가의 비전은 아니지만 만능 예술가로서 그 누구에 비해 손색이 없는 장 콕토는 프랑스 문화의 중심적인 인물이다. 친구 피카소의 기법을 도입해 입체감이 넘치도록 이미지를 구성한 시를 쓴 시인이었고, 아방가르드 연극인이었으며, 자신의 시집에 직접 삽화를 그린 화가였다. 뿐만 아니라 조각가이기도 하며 소설가, 영화감독, 문학비평가, 배우 등 그를 쫓는 직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빠진다면 장 콕토에 대한 정당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1889년 7월5일 파리 근교의 메종 라피트에서 출생한 그는 『알라딘의 램프』라는 첫 시집을 발표함으로써 화려한 인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6인조 그룹이라는 음악인 그룹을 조직하기도 하였고, 소설가로서도 명성을 날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열심이었던 것은 전위 연극이었다. 초기 전위 연극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1925년 희곡 『오르페』를 시작으로 1930년대에는 영화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 현재 남아 있는 공식적인 첫 작품인 『시인의 피 Le Sang d’un Po e』(1930)를 시작으로 그는 사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영화적 공간을 창출한다. 혹자는 그에 대한 평가를 단순하게 축약하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와 소설적인 전통이 어떻게 영화로 옮겨질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정당하다. 시와 소설에서 출발한 만큼 문학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영역도 많다. 특히 시적인 대사와 음악 사용은 이러한 지적에 공감하도록 한다. 하지만 영화 매체에 대한 그의 성찰은 남다른 것이 많다.

『시인의 피』 『오르페 Orph 』(1950) 『오르페의 유언 Le Testament d’Orph 』(1960)으로 이어지는, 3부작에서 전개되는 영화적 공간은 멜리에스 이후 콕토를 영화적 공간의 실험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로 내세운다. 물론 시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세계는 다소 신비롭기는 하지만 그가 노래한 오르페우스야말로 음악의 신이자 지옥의 문을 넘나든 신화적 인간이 아니었던가. 시인의 비전은 콕토의 영화 속에서 예술가의 초상으로 환원되고, 우리는 예술가의 초상을 통해 다시 삶과 예술이라는 낡은 주제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한편으로 『시인의 피』를 만든 이후 첫 장편인, 그리고 낭만적이면서도 콕토다운 『미녀와 야수 La Belle et la B e』(1946)를 16년 만에 발표한 것은 비록 영화가 그의 비전은 아니지만 시와 다른 형태의 실험의 장이었음을 설명해준다. 그는 『미녀와 야수』로 대중적인 감독이 되기도 하였지만 영화에 인생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본질은 역시 영화를 통해 ‘개인적인 비전’을 선보이는 것이다. 3부작에서 보여지는 이중의 세계는 우리를 신화적 공간으로 유혹한다. “드러나지 않는 현실의 다큐멘터리”라고 일컬어진 『시인의 피』는 유언하듯 초현실적인 삶의 유혹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것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그에 대한 비난을 뒤로 하고, 트뤼포가 질의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상관없었던 콕토의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영화평론가인 로이 암스는 『오르페의 유언』이야말로 프랑수아 트뤼포가 나중에 받아들였던 『아메리카의 밤 Day For Night』의 세계와 유사한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영감과 사색으로 가득 찬 콕토의 비전이야말로 60년대에 프랑스영화가 새로워지는데 밑천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온당한 적자는 80년대 들어와서야 레오스 카락스라는 감독을 통해 완전하게 재현되었지만 이미 우리는 그의 다방면에 걸친 유산을 물려받은 지 오래다. 장 콕토는 1963년 10월11일 밀리 라 포레에서 사망하였다. 신화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죽음이었다. / 영화감독사전, 1999
대표작 『시인의 피』 『오르페의 유언』 『오르페』

바그너식의 종합적인 예술가의 비전은 아니지만 만능 예술가로서 그 누구에 비해 손색이 없는 장 콕토는 프랑스 문화의 중심적인 인물이다. 친구 피카소의 기법을 도입해 입체감이 넘치도록 이미지를 구성한 시를 쓴 시인이었고, 아방가르드 연극인이었으며, 자신의 시집에 직접 삽화를 그린 화가였다. 뿐만 아니라 조각가이기도 하며 소설가, 영화감독, 문학비평가, 배우 등 그를 쫓는 직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빠진다면 장 콕토에 대한 정당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1889년 7월5일 파리 근교의 메종 라피트에서 출생한 그는 『알라딘의 램프』라는 첫 시집을 발표함으로써 화려한 인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6인조 그룹이라는 음악인 그룹을 조직하기도 하였고, 소설가로서도 명성을 날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열심이었던 것은 전위 연극이었다. 초기 전위 연극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1925년 희곡 『오르페』를 시작으로 1930년대에는 영화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 현재 남아 있는 공식적인 첫 작품인 『시인의 피 Le Sang d’un Po e』(1930)를 시작으로 그는 사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영화적 공간을 창출한다. 혹자는 그에 대한 평가를 단순하게 축약하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와 소설적인 전통이 어떻게 영화로 옮겨질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정당하다. 시와 소설에서 출발한 만큼 문학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영역도 많다. 특히 시적인 대사와 음악 사용은 이러한 지적에 공감하도록 한다. 하지만 영화 매체에 대한 그의 성찰은 남다른 것이 많다.

『시인의 피』 『오르페 Orph 』(1950) 『오르페의 유언 Le Testament d’Orph 』(1960)으로 이어지는, 3부작에서 전개되는 영화적 공간은 멜리에스 이후 콕토를 영화적 공간의 실험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로 내세운다. 물론 시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세계는 다소 신비롭기는 하지만 그가 노래한 오르페우스야말로 음악의 신이자 지옥의 문을 넘나든 신화적 인간이 아니었던가. 시인의 비전은 콕토의 영화 속에서 예술가의 초상으로 환원되고, 우리는 예술가의 초상을 통해 다시 삶과 예술이라는 낡은 주제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한편으로 『시인의 피』를 만든 이후 첫 장편인, 그리고 낭만적이면서도 콕토다운 『미녀와 야수 La Belle et la B e』(1946)를 16년 만에 발표한 것은 비록 영화가 그의 비전은 아니지만 시와 다른 형태의 실험의 장이었음을 설명해준다. 그는 『미녀와 야수』로 대중적인 감독이 되기도 하였지만 영화에 인생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본질은 역시 영화를 통해 ‘개인적인 비전’을 선보이는 것이다. 3부작에서 보여지는 이중의 세계는 우리를 신화적 공간으로 유혹한다. “드러나지 않는 현실의 다큐멘터리”라고 일컬어진 『시인의 피』는 유언하듯 초현실적인 삶의 유혹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것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그에 대한 비난을 뒤로 하고, 트뤼포가 질의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상관없었던 콕토의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영화평론가인 로이 암스는 『오르페의 유언』이야말로 프랑수아 트뤼포가 나중에 받아들였던 『아메리카의 밤 Day For Night』의 세계와 유사한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영감과 사색으로 가득 찬 콕토의 비전이야말로 60년대에 프랑스영화가 새로워지는데 밑천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온당한 적자는 80년대 들어와서야 레오스 카락스라는 감독을 통해 완전하게 재현되었지만 이미 우리는 그의 다방면에 걸친 유산을 물려받은 지 오래다. 장 콕토는 1963년 10월11일 밀리 라 포레에서 사망하였다. 신화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죽음이었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