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번역 『논리학』을 포함한 한국칸트학회 기획 칸트전집 13권인 『논리학·교육론』은 칸트의 주요 강의에 대한 기록이다. 칸트의 직접 저술이 아닌 이 두 강의록의 학문적 중요성은 그것이 칸트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는 단초를 놓는 데에 있다. 비판철학의 초석을 다지고 궁극의 인간성에 다가가는, 칸트철학의 처음과 끝을 다룬 저작이다.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가르치는 정교수였던 칸트는 수많은 저서를 출판했지만, 논리학만을 위한 독립적인 저술은 남기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예셰가 편찬한 『논리학』은 칸트의 논리학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교육론』은 1774년부터 1786년 사이에 네 번에 걸쳐 이루어진 칸트의 교육학 강의 노트를 모은 책이다. 칸트는 자신의 궁극적인 철학 과제로 ‘철학적 인간학’을 설정했다. 칸트의 『교육론』은 궁극적인 인간성 실현에 대한 논의로, 칸트의 ‘철인’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저작이다.
Contents
『칸트전집』을 발간하면서
『칸트전집』 일러두기
논리학
머리말
서론
I. 논리학이란
II. 논리학의 주요 분류 강의 이 학문의 유용성 논리학사 개요
III. 철학이라는 개념 학술 개념에 따라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개념에 따라 고찰한 철학 철학함의 본질적 필요와 목적 철학의 가장 보편적인 그리고 최상의 과제
IV. 철학사에 관한 짧은 개요
V. 인식 일반 직관적 인식과 개념적 인식: 직관과 개념 그리고 특히 그것들의 차이 인식의 논리학적 완전성과 감성학적 완전성
VI. 인식의 특수한 논리학적 완전성
A) 양에 따른 인식의 논리학적 완전성 양 외연적 양과 내포적 양 인식의 광범위함과 철저함 또는 중요성과 생산성 우리 인식 지평의 규정
VII.
B) 관계에 따른 인식의 논리학적 완전성 진리 재료적 진리와 형식적 혹은 논리학적 진리 논리학적 진리의 기준들 거짓과 오류 오류의 원천으로서 가상 오류를 피하기 위한 수단
VIII.
C) 질에 따른 인식의 논리학적 완전성 분명함 징표 일반의 개념 징표의 상이한 종류 한 사물의 논리학적 본질의 규정 논리학적 본질과 사실적 본질의 차이 명료함, 더 높은 정도의 분명함 감성학적 명료함과 논리학적 명료함 분석적 명료함과 종합적 명료함의 차이
IX.
D) 양상에 따른 인식의 논리학적 완전성 확실함 참이라고 생각함의 개념 일반 참이라고 생각함의 양상: 의견을 갖다, 믿다, 알다 확실한 납득과 남의 말에 따름 판단을 자제함과 유예함 잠정적인 판단 편견과 편견의 원천 및 주요 종류
X.
개연성 개연성 정의 개연성과 그럴듯함의 차이 수학적 개연성과 철학적 개연성 의심 주관적 의심과 객관적 의심 회의적, 독단적, 비판적 사고방식 혹은 철학함의 방법 가설
부록
: 이론적 인식과 실사용적 인식의 차이에 대하여
I. 일반 요소론
제1절 개념
제2절 판단
제3절 추론
I. 지성 추론
II. 이성 추론
III. 판단력의 추론
II. 일반 방법론
I. 개념의 정의, 설명, 기술에 의한 인식의 논리학적 완전성 촉진
II. 개념의 논리학적 분류로 인식의 완전성 촉진
교육론
편집자의 머리말
서론
본론
자연적 교육에 대하여
실천적 교육에 대하여
해제
『논리학』이엽 김창원
『교육론』박찬구
옮긴이주
찾아보기
Author
임마누엘 칸트,이엽,김창원,박찬구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