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

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
$17.25
SKU
9788933114087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12/6 - Thu 12/12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12/3 - Thu 12/5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1/03/30
Pages/Weight/Size 150*220*20mm
ISBN 9788933114087
Categories 종교 > 천주교
Description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 시절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학장인 르그레즈와 신부, 리브와 신부 그리고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편지들과 사제로 순교하기 전에 남긴 편지글 모음이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가 서울에서 작성한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대한 보고서가 실려 있다. 아울러 한국천주교회의 간략한 역사와 당시 사용된 교회 용어 해설도 수록되어 있다.
Contents
역자의 말
피의 증거와 땀의 증거 _ 4

1부 한국천주교회의 간략한 역사
한국천주교회의 간략한 역사 _ 13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생애 _ 34

2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첫 번째 편지 이 여행이 험난할 줄 압니다만 _ 47
세 번째 편지 사람의 도움을 모두 잃고 _ 49
네 번째 편지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_ 55
다섯 번째 편지 모두 진흙에 발이 빠졌고 _ 70
여섯 번째 편지 감히 길에 나서지를 못하고 _ 75
일곱 번째 편지 마음이 죄어드는 듯 _ 84
여덟 번째 편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_ 94
아홉 번째 편지 훈춘 기행문 _ 97

3부 성모님께 깊이 의탁하고
열 번째 편지 우리는 기쁨에 넘쳐 _ 127
열한 번째 편지 과오가 아니라 덕행 _ 134
열두 번째 편지 비록 병중이기는 하나 _ 143
열세 번째 편지 주교님의 귀환을 기다리며 _ 151
열네 번째 편지 혼자 밤중에 강을 건너 _ 153
열여섯 번째 편지 성모님께 깊이 의탁하고 _ 155
열일곱 번째 편지 상해에 도착했을 때 _ 166
열여덟 번째 편지 원의를 지닌 것 외에는 _ 171

4부 교우들 보아라
열아홉 번째 편지 마지막 하직 인사 _ 177
스무 번째 편지 마지막 순간까지 _ 182
스물한 번째 편지 교우들 보아라 _ 197

5부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1. 조선 순교사에 관한 보고서 _ 205
조선교회 창립에 관한 개요 _ 205
1839년 기해박해의 진상 _ 213
2. 조선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_ 229
1839년 순교한 몇몇 주요한 순교자들의 행적 _ 229
형벌, 감옥, 재판에 대하여 _ 237
1839년 서울에서 순교한 주요한 순교자들의 행적 _ 247
미주
Author
김대건,정진석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포, 곧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 솔뫼에서 순교 성인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1836년 7월 11일 서울에 도착하여 라틴어를 배웠다. 그해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12월 3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변문을 거쳐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도착했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임시로 설치된 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소팔가자에서 1844년 12월 15일 부제품을, 상해에서 1845년 8월 17일 사제품을 받았다. 1845년 10월 페레올 주교와 함께 상해를 떠나 강경포에 성공적으로 상륙했다. 그리고 1846년 5월 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포, 곧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 솔뫼에서 순교 성인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1836년 7월 11일 서울에 도착하여 라틴어를 배웠다. 그해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12월 3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변문을 거쳐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도착했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임시로 설치된 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소팔가자에서 1844년 12월 15일 부제품을, 상해에서 1845년 8월 17일 사제품을 받았다. 1845년 10월 페레올 주교와 함께 상해를 떠나 강경포에 성공적으로 상륙했다. 그리고 1846년 5월 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