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는 『신학대전』 제1부의 제58-64문에 해당하는 『신학대전』제8권에서 영적 피조물인 천사의 활동에 관해 다루고 있다. 창조에 관한 논의의 일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을 통해 토마스는 천사의 인식 양태, 천사의 의지와 사랑, 천사의 기원, 타락한 천사인 마귀의 처벌 등에 대해 차례로 서술하고 있다.
Contents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격려와 축복의 말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발췌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발췌문/ 우리말 번역에 부쳐/ 『신학대전』 간행계획/ 일러두기/ 일반약어표/ 성 토마스 작품 약어표/ ‘천사의 활동’ 입문
제59문 천사들의 의지에 대하여
제1절 천사 안에 의지가 있는가?
제2절 천사 안에서 의지는 지성과 본성으로부터 구별되는가?
제3절 천사 안에 자유의지가 있는가?
제4절 천사 안에 분노적인 것과 욕정적인 것이 있는가?
제60문 천사들의 사랑 혹은 애정에 대하여 제1절 천사 안에 본성적 사랑이나 애정이 있는가?
제2절 천사 안에 선택적 애정이 있는가?
제3절 천사는 본성적 애정과 선택적 애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가?
제4절 천사는 본성적 애정으로 다른 천사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가?
제5절 천사는 본성적 애정으로 자신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가?
제61문 본성의 존재 안에서 천사들의 창조에 대하여 제1절 천사는 자신의 존재 원인을 가지고 있는가?
제2절 천사는 하느님에 의해서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는가?
제3절 천사는 물체적 세계 이전에 창조되었는가?
제4절 천사는 정화천(淨火天)에서 창조되었는가?
제62문 은총과 영광의 존재 안에서 천사들의 완성에 대하여 제1절 천사는 자신이 창조될 때에 복되었는가?
제2절 천사는 하느님께 돌아서기 위해서 은총이 필요했는가?
제3절 천사는 은총 안에서 창조되었는가?
제4절 복된 천사는 그 참행복을 누릴 공로가 있는가?
제5절 천사는 한 가지 공로가 되는 행위를 하자마자 참행복에 이르게 되었는가?
제6절 천사는 자기 본성의 크기에 따라 은총과 영광을 받는가?
제7절 복된 천사 안에는 자연적 인식과 애정이 남아 있는가?
제8절 복된 천사는 범죄할 수 있는가?
제9절 복된 천사는 그의 참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가?
제63문 천사들의 악함, 즉 과오에 대하여 제1절 천사에게 과오의 악함이 있을 수 있는가?
제2절 천사에게 교만의 죄와 시기의 죄가 있을 수 있는가?
제3절 악마는 하느님처럼 되고자 욕구했는가?
제4절 어떤 마귀는 본성적으로 악한가?
제5절 마귀는 그 창조의 첫 번째 순간에 자기 의지의 과오로 인해 악했는가?
제6절 천사의 창조와 타락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가?
제7절 추락한 천사 가운데 최고는 단적으로 모든 천사 가운데 최고인가?
제8절 첫째 천사의 죄는 다른 천사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었는가?
제9절 남은 천사들만큼 추락한 천사가 있었는가?
제64문 마귀들의 처벌에 대하여 제1절 마귀의 지성은 모든 진리에 대한 인식의 결핍으로 인해 어두워졌는가?
제2절 마귀의 의지는 악을 고집하는가?
제3절 마귀에게 고통이 있는가?
제4절 이 대기(大氣)는 마귀의 처벌 장소인가?
주제 색인/ 인명 색인/ 성경 색인/ 토마스 아퀴나스 작품 색인/ 고전 작품 색인
Author
토마스 아퀴나스,강윤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