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공통 학자이자 대성, 대학이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 집약된 「신학대전」의 번역을 통해 성 토마스 사상의 미래지향성과 영구성을 알아보고 새로운 학문적 자양의 원천을 제공하며 우리 문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신학대전 21권-두려움과 분노」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다루며 이중 희망, 두려움, 담대함, 분노를 다루고 있다.
Contents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격려와 축복의 말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발췌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발췌문/ 우리말 번역에 부쳐/ 『신학대전』 간행계획/ 일러두기/ 일반약어표/ 성 토마스 작품 약어표/ ‘두려움과 분노’ 입문
제40문 분노적 정념들에 대하여. 먼저, 희망과 절망에 대하여
제1절 희망은 갈망 또는 탐욕과 같은 것인가?
제2절 희망은 파악(인식) 능력 안에 있는가, 또는 욕구 능력 안에 있는가?
제3절 희망은 짐승들 안에 있는가?
제4절 절망은 희망에 반대되는가?
제5절 경험이 희망의 원인인가?
제6절 희망은 젊은이들과 술 취한 사람들 안에서 넘쳐나는가?
제7절 희망은 사랑의 원인인가?
제8절 희망은 작용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장애가 되는가?
제41문 두려움 그 자체에 대하여
제1절 두려움은 영혼의 정념인가?
제2절 두려움은 특수한 정념인가?
제3절 자연적인 두려움이 있는가?
제4절 두려움의 종류는 제대로 적시(摘示)되었는가?
제42문 두려움의 대상에 대하여
제1절 두려움의 대상은 선인가 또는 악인가?
제2절 자연악은 두려움의 대상인가?
제3절 잘못에서 비롯된 악은 두려움의 대상인가?
제4절 우리는 두려움 그 자체를 두려워할 수 있는가?
제5절 우리는 급작스러운 것들을 더 두려워하는가?
제6절 대처 수단이 없는 것에 대하여 더 두려워하는가?
제43문 두려움의 원인에 대하여
제1절 사랑이 두려움의 원인인가?
제2절 결함이 두려움의 원인인가?
제44문 두려움의 결과에 대하여
제1절 두려움은 수축(收縮)을 일으키는가?
제2절 두려움은 의논하게 만드는가?
제3절 두려움은 떨게 만드는가?
제4절 두려움은 작용에 장애가 되는가?
제45문 담대(膽大)함에 대하여
제1절 담대함은 두려움에 반대되는가?
제2절 담대함은 희망을 따르는가?
제3절 어떤 결함이 담대함의 원인인가?
제4절 담대한 자는 위험 중에 있을 때보다 처음에 더 적극적인가?
제46문 분노 그 자체에 대하여
제1절 분노는 특수한 정념인가?
제2절 분노의 대상은 선인가 또는 악인가?
제3절 분노는 욕정적 [정념들] 안에 있는가?
제4절 분노는 이성과 함께 있는가?
제5절 분노는 욕망보다 더 본성적인가?
제6절 분노는 (죄악의 정도에서) 증오보다 더 중대한가?
제7절 분노는 정의의 관계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만 존재하는가?
제8절 분노의 종(種)은 적절하게 할당되었는가?
제47문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과 그 대처 수단에 대하여
제1절 분노의 동인은 항상 분노하는 자를 거슬러 이루어진 어떤 것인가?
제2절 경시나 경멸만이 분노의 동인인가?
제3절 분노하는 자의 탁월함이 분노의 원인인가?
제4절 어떤 사람의 결함은 우리가 그에 대해 더 쉽게 분노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가?
제48문 분노의 결과에 대하여
제1절 분노는 쾌락을 유발하는가?
제2절 분노는 심장의 열기의 가장 주요한 원인인가?
제3절 분노는 이성의 사용을 가장 방해하는가?
제4절 분노는 우리를 침묵하게 만드는가?
주제 색인/ 인명 색인/ 성경 색인/ 토마스 아퀴나스 작품 색인/ 고전 작품 색인
Author
토마스 아퀴나스,채이병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