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미국, 그 어느 땅에도 뿌리박기를 거부한 작가 기예르모 로살레스.
삶에 절망한 사람들이 흘러드는 마이애미 변두리의 한 보호소,
그곳에서 보낸 고통의 시간을 그린 자전적 소설.
쿠바 망명 문학의 대표작이라 평가 받는, 기예르모 로살레스의 작품. 작가는 쿠바 출신의 작가인 주인공 윌리엄 피게라스가 마이애미의 사설 보호소 보딩 홈에서 보낸 고통의 나날을 건조하고 간결한 필치로 그려낸다. 쿠바에서 살던 시절 직접 혁명에 참여하기도 했던 로살레스는 쿠바 정권과 미국 내의 쿠바 이민자 사회 양쪽 모두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내며, 이중의 망명자로서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1980년 카스트로 정권의 정책 아래, 다수의 쿠바인들이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해갔다. 쿠바에서 태어나 10대 시절부터 혁명에 투신했던 기예르모 로살레스는 정신 분열증의 악화, 혁명의 변질 등으로 인해 미국행을 결심하는데, 일찌감치 마이애미에 정착해 있던 친척들은 그를 홀대하고 마이애미의 사설 보호소에 맡긴다. 『표류자들의 집』은 그렇게 보호소와 정신 병원, 호텔을 전전하던 로살레스가 당시의 비극적 현실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로, 문단의 호평을 끌어내며 작가로서 로살레스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맛보게 한다.
Contents
표류자들의 집
역자 해설: 환멸의 미로에서 탈주를 꿈꾸다
기예르모 로살레스 연보
Author
기예르모 로살레스,최유정
1946년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쿠바 혁명에 투신해 농부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1959년 쿠바 혁명이 성공을 거둔 뒤 당의 장학생으로 법학과 외교학을 공부했다. 15세였던 1961년부터 〈청년 저항 연대〉의 기관지 「메야」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날카로운 필력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평생 정신 분열증에 시달렸다. 혁명의 변질에서 오는 좌절과 악화되는 병세 속에서도 계속해서 글을 썼고, 1968년에는 소설 『영광의 토요일, 부활의 일요일』이 〈아메리카의 집 문학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다.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환멸로 괴로워하던 로살레스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경유해, 1980년 마이애미에 입성했다. 그로부터 7년 만에 내놓은 소설 『표류자들의 집』으로, 미국에서 스페인어로 쓰인 작품에 주는 문학상인 〈황금 문학상〉을 거장 옥타비오 파스의 시상으로 거머쥐었다. 한평생 쉬지 않고 글을 쓰고도 자기 환멸에 사로잡혀 찢거나 태워 없애기를 반복한 탓에, 로살레스가 생전에 온전한 형태로 남긴 원고는 앞서 언급한 두 편뿐이었다. 1993년 7월 6일 아침, 마이애미. 로살레스는 권총의 총구를 관자놀이에 대고 〈총체적 망명자〉로서의 질곡 많은 생을 마감했다.
1946년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쿠바 혁명에 투신해 농부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1959년 쿠바 혁명이 성공을 거둔 뒤 당의 장학생으로 법학과 외교학을 공부했다. 15세였던 1961년부터 〈청년 저항 연대〉의 기관지 「메야」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날카로운 필력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평생 정신 분열증에 시달렸다. 혁명의 변질에서 오는 좌절과 악화되는 병세 속에서도 계속해서 글을 썼고, 1968년에는 소설 『영광의 토요일, 부활의 일요일』이 〈아메리카의 집 문학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다.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환멸로 괴로워하던 로살레스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경유해, 1980년 마이애미에 입성했다. 그로부터 7년 만에 내놓은 소설 『표류자들의 집』으로, 미국에서 스페인어로 쓰인 작품에 주는 문학상인 〈황금 문학상〉을 거장 옥타비오 파스의 시상으로 거머쥐었다. 한평생 쉬지 않고 글을 쓰고도 자기 환멸에 사로잡혀 찢거나 태워 없애기를 반복한 탓에, 로살레스가 생전에 온전한 형태로 남긴 원고는 앞서 언급한 두 편뿐이었다. 1993년 7월 6일 아침, 마이애미. 로살레스는 권총의 총구를 관자놀이에 대고 〈총체적 망명자〉로서의 질곡 많은 생을 마감했다.